부시 잇단 거부권… 의회 “곤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재임 18개월동안 무려 12번이나 행사/거의 외교ㆍ노조관련안… “민주정신 위배”비판
엄격한 3권분립으로 안정된 정치구조를 유지해온 미국에서 날이 갈수록 대통령의 권력편중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행정부에 대한 견제기관인 미의회가 통과시킨 법안들이 대통령의 비토권(거부권) 행사로 무참히 사장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취임당시 의회와의 협력을 다짐했던 부시대통령은 「의회중시론」이 무색할 정도로 비토권을 행사,의회의 반발을 사고 있다.
부시는 최근 연방 공무원들의 부분적인 정치활동 참여를 허가하는 의회의 법안에 비토권을 행사함으로써 재임 18개월동안 무려 열두번째의 비토권행사를 기록했다.
이는 닉슨ㆍ카터ㆍ레이건 등 전임자들보다 같은 기간중 훨씬 많은 숫자다. 부시대통령은 민주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의회에 대한 「효율적」견제수단으로 비토권을 빈번히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 의회가 지난달 14일 통과시킨 「가족의료휴가」법안 역시 비토권이 행사될 것이라고 백악관측이 밝히고 있어 또한번 의회는 대통령의 비토권행사에 직면하게 됐다.
백악관의 비토권은 이제 그 행사 위협만으로도 대통령의 취향에 맞는 법안을 만들게 하는 막강한 것으로 변경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일단 대통령이 거부한 법안에 대해 의회가 재의결하기 위해선 상하양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므로 이같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잘 알고 있는 미의원들이 백악관의 거부를 받을 만한 법안은 아예 사전에 수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반면 몇몇 의회지도자들중에는 대통령이 비토한 법안을 다시 부활시키겠다는 의지파들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부시의 비토권행사가 단 한번도 의회에서 재의결되지 않았던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간단한 일은 아니다.
부시대통령은 지난번 의회가 인공유산 정부보조기금을 허가하는 법조항을 삭제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요청으로 의회에 상정돼 있는 파나마와 니카라과에 대한 「비상원조법안」에 비토권을 행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적도 있다.
이에 의회는 다양한 국내정책 자금들이 포함돼 있는 이 법안의 실행을 위해 하는 수 없이 부시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다.
부시대통령의 비토권행사는 두가지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나는 의회가 자신이 원치 않는 외교정책방향을 강요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고 다른 하나는 노조와의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점이다.
12차례의 비토권행사중 5건은 외교정책에 관한 것이었고 3건은 노조와 관련된 것이었다.
한편 역대 미대통령들의 임기 첫해동안의 비토권행사 기록을 비교해 보면 각자의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부시는 임기 첫해에 열번,레이건과 카터는 각각 2회인데 비해 닉슨은 임기 첫해에는 비토권을 단 한번도 행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역사상 최초로 선거없이 선출된 포드 전 대통령은 취임후 1년간 무려 27회에 달하는 비토권을 행사했었다.
이같은 빈번한 대통령의 거부권행사가 아무리 헌법에 보장된 것이기는 하지만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점차 강하게 일고 있다.<이정필기자>
□부시대통령 비토권 행사내용
일 시 비 토 권 법 안
89.6.13 시간당 최저임금 인상안(현행 3달러35센트→
4달러55센트)
7.31 최첨단 FSX전투기 개발의 일본동참 배제안
8.16 저축대부금 구제를 위한 등록절차안
10.21 강간ㆍ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시 정부 보조금에
의한 인공유산 허가안
10.27 인공유산 보조금 지원을 포함한 워싱턴 시정부
예산안
11.19 유엔의 가족계획기구 자금을 포함한 해외원조기금안
11.20 인공유산보조금 확보위한 워싱턴 시정부의 지방세
인상안
11.21 이스턴항공사 노조파업해결 위한 의회특별기구
설치재원확보안
〃 국무부의 외교활동영역 확대안
11.30 미국체류중인 중국인 학생들의 비자연장허가안
90.5.24 연방정부의 철도수송통제권 일부 철도운송업체로의
일부위임안
6.15 미공무원들의 정치활동참여 허가안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