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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법안 본회의 통과… 「변칙 파노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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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통로서 30초 만에 전격 처리/박의장 바람잡는 새 김부의장이 사회/극비속 행동 2분전 “모여라” 여/초강공 내걸고 여론에 호소 야
제150회 임시국회는 여당이 단 30초 만에 23개 법안을 날치기 통과하는 것으로 추태의 대단원을 내리고 말았다.
평민당은 본회의를 원천봉쇄하면서 기습ㆍ변칙통과에 대비해 국회 곳곳에 저지반을 배치했으나 민자당은 박준규의장이 바람을 잡는 가운데 김재광부의장을 본회의장 복도에 내세워 희대의 전격처리를 감행한 것이다.
○…박의장이 본회의장 출입을 저지당한 뒤 25분만에 오전 10시31분 본회의장 중간좌석에 앉아 있던 서정화의원(민자당)의 신호에따라 민자당의원들이 회의장 뒤쪽에 앉아 있던 김재광국회부의장쪽으로 몰려들면서부터 30초 만의 전격통과작전을 개시.
김부의장은 주변 민자당의원들 50여명의 철벽경호를 받으며 최승수의원과장으로부터 건네받은 무선마이크를 들고 통로 중간으로 걸어나가다 휴대용 무선마이크를 이협ㆍ박석무의원 등에게 빼앗겼다.
김부의장은 육성으로 『본회의를 개의한다』 『추경안및 법안을 일괄통과시키고자 하는데 이의없습니까』라고 말하고 민자당의원들이 『이의없다』고 합창하자 곧바로 회의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작전종료.
이에 의장석을 점거하고 있던 평민당의원들이 김부의장을 향해 돌진했으나 주변의 민자당의원들과 몸싸움ㆍ고함을 주고받았을 뿐 저지에 실패.
평민당의원들은 『살인마의 앞잡이들』 『원인무효』 등의 소리를 지르고 의장석 바로앞의 속기석으로 몰려가 『저쪽 발언이 기록돼 있느냐』고 묻고 기록하지 못한 것을 확인한 뒤 『불법처리됐다』고 다시 고함.
○…한편 평민당의 채영석ㆍ유인학의원 등은 국회의장실에서 본회의 통과상황을 보고하러 온 의사국장을 붙들어 본회의장으로 끌고 왔으며 평민당의원들이 보는 가운데 『너도 날치기의 동조자』라고 분풀이.
박의장은 오전 10시27분 여야 의원 10여명에게 둘러싸인 채 의장실에서 20m쯤 떨어진 본회의장 입구까지 들어갔으나 이미 본회의장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격돌,박의장은 1분 만에 의장실로 돌아왔다.
그러나 의장의 본회의장 출입저지조로 편성된 평민당 의원들은 강우혁부의장특보가 들어와 이미 김재광부의장 주재로 모든 안건이 본회의장에서 통과되고 본회의는 산회했다는 얘기를 듣고 허탈.
민자당측은 이날 지도부와 총무단을 제외하곤 전격통과작전을 극비에 부쳤다가 행동개시 2분전쯤 권해옥부총무가 본회의장 의석을 돌며 현장하달.
○…이날 민자당의 작전은 절묘한 양동작전.
민자당의원들은 평민당의원들의 관심을 다른 곳에 돌리기 위해 의장석 쪽을 향해 『의장 데려와라』라고 계속 고함.
평민당의원들이 민자당 총무단의 고함에 정신이 팔린 사이 김재광부의장이 기습적으로 작전을 수행한 것.
평민당의원들은 이날 작전이 김영삼대표가 79년 신민당총재시절 제명당했던 상황을 김대표가 거꾸로 재연했다고 주장.
당시 공화당의원이었던 김봉호의원은 『당시 백두진국회의장이 뒷문으로 들어와 단독통과시켰는데 김영삼대표가 자신이 당했던 상황을 그대로 모방,써먹은 것』이라고 주장.
○…평민당은 민자당의 날치기 처리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정확한 내용조차 모른 채 우왕조왕.
뒤늦게 김재광부의장이 가결선포한 사실을 알고는 본회의장에서 긴급간담회를 열어 사후대책을 논의.
이 자리에서 참석의원들은 대부분 의원직 사퇴등 초강공을 고집하는등 험악한 분위기.
그러나 당지도부는 내각제개헌 발의등 결정적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괴롭히더라도 인고하는 자세가 국민정서에도 부합한다며 만류하고 있으나 귀추가 주목.
한편 요소요소에 배치됐던 당직자들은 『김부의장을 맡았던 감시반이 어떻게 했길래 놓쳤느냐』고 성토하는등 허탈과 분노가 섞인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모습.
김태식대변인은 본회의장 속기사 4명으로부터 『14일 오전 10시34분 현재 제150회 국회의 11차 본회의 회의록을 작성한 바 없음을 확인합니다』는 확인서를 받아 사본을 보도진에 공개.
김대변인은 최승수위원과장의 국회직원 명찰을 치켜들며 『이 사람이 무선 마이크를 김부의장에게 건네주면서 갑자기 회의가 진행된 것으로 안다』면서 『국회의장이 의안보고도 하지 않은 날치기 처리는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거듭 격앙.
○…법안의 날치기 통과후 오전 11시30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평민당 의원총회에서 김재광부의장을 「담당」했던 이협부총무는 『김부의장에게 깜빡 속았다』며 풀죽은 표정으로 경위를 설명.
본회의에 앞서 박석무ㆍ홍기훈의원 등 3명과 함께 김부의장을 저지하는 책임을 배당받았던 이부총무가 부의장실에 들어서자 김부의장은 『나는 법안내용을 전혀 모른다. 사회를 맡지 않을 테니 걱정말라』고 연막을 피웠다는 것.
이부총무가 그래도 경계태세를 풀지 않자 곁에 있던 박종률의원(민자당 민주계)이 『이의원,생각해보시오. 민주계인 김부의장이 무엇하러 악역을 맡겠소라고 말하면서 김부의장에게 의무실에 가서 영양주사나 맞고 푹 쉬시지오라고 권하는등 바람을 잡더라』고 이부총무는 설명.
이부총무는 김부의장이 『남의 눈도 있고 하니 의석에나 앉아 있겠다고 해 별 의심없이 본회의장 입장을 방치해 「화」를 불러들였다』며 한탄.
○…한편 속기록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김윤환정무장관은 『본회의 속기사가 아닌 다른 상임위 소속 속기사를 대기시켰으며 녹음기를 휴대,통과과정을 전부 녹음했다』고 밝혔다.
또 김동영 민자당총무는 법안의 강행처리후 『본회의 변칙통과는 평민당의원들에 의한 의장감금,신성한 본회의장 점거 등으로 정상적 운영이 불가능한 속에서 이 방법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고 날치기 통과를 정당화했다.
김총무는 평민당이 날치기 통과 무효를 주장하는 데 대해 『오히려 김부의장이 이의있느냐고 물었을 때 이의있다고 말하는 의원이 없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만장일치』라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날치기 통과당시 국회경위 10여명이 회의장 출입문 3개를 막고 있었던 데 대해 평민당의원들은 『경호권 발동이 안된 상태에서 경위들이 회의장에 들어온 것은 국회사무처까지 날치기에 개입한 것』이라고 주장.
한편 박준규의장은 본회의 통과후 의장실로 몰려든 평민당의원들에게 『왜 나한테만 달려드느냐』 『김재광ㆍ조윤형부의장에게도 가보라』며 책임분담론을 폈다는 후문.
○…평민당의 국회의장담당 밀착이동반(반장 채영석) 6명은 14일 오전 9시50분쯤 국회의장비서진의 제지를 뚫고 의장실로 들어가 박준규의장의 의사당행을 몸으로 저지했다.
박의장은 『의장석 위에까지만 가게 해 달라. 내 체면도 있으니 한번만 의장단상에 올려달라』고 설득했으나 평민당의원들은 이를 듣지 않았다.
국회 개회시간이 5분쯤 지난 오전 10시5분 박의장은 평민당의원들을 설득,1분동안만 본회의장 입구까지만 가기로 합의,여야 의원 10여명에게 둘러싸인 채 입구까지 갔으나 평민당의원들의 제지로 다시 의장실로 돌아왔다.
본회의장 입구에서 박의장은 큰소리로 의장단석 위에 있는 문동환의원(평민)에게 『문동환의원 왜 거기 있나요. 내가 올라가도 날치기는 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오전 10시30분 현재 의장실에는 10여명의 여야 의원들이 박의장의 본회의장 진입을 놓고 승강이를 벌였다.
○…김영삼대표ㆍ김종필최고위원과 박준병총장ㆍ김동영총무ㆍ김용환정책위의장 등은 14일 본회의 통과에 앞서 여러차례 구수회의를 갖고 이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평민당이 워낙 밀착저지를 해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어 보이는데도 김윤환정무1장관은 『기가 막히게 통과시킬 수 있다』고 호언.
이에따라 5공시절처럼 예결위 회의장을 쓰거나 민자당 의원실에 전격적으로 모여 기습적으로 통과시키는 전략이 짜여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경호권 발동여부에 대해 김영삼대표는 『그런 것은 국회의장에게 물어봐라』고 노코멘트했는데 김정무장관은 『그런 것은 안하고 통과시켜야지』라고 했다.
박준병사무총장은 『가능한 한 오늘(14일) 모두 처리할 방침』이라고 했다.
서정화수석부총무는 총무단과 대책회의를 갖고 평민당의 인원배치도표등을 입수,대응작전을 도상연습하듯이 마련.<박보균ㆍ김두우ㆍ이재학ㆍ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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