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안보이는 「세종대 터널」/남정호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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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수업거부와 공권력 개입이란 악순환을 거듭하던 세종대사태는 10일의 정부대책발표로 재학생 전원유급에 신입생모집 불가란 파국을 맞으면서도 전혀 해결점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10일에 이어 11일에도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고 선별유급이란 기준도 모호해 지금같아서는 2학기가 된다해도 불씨는 계속 남게될 전망이다.
또 격화된 학생들의 감정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재단이사장이나 재단이사의 경질이 사태해결에 얼마나 도움을 줄지 의심스럽다.
결국 이번 사태는 학생ㆍ재단ㆍ문교당국 3자 모두의 판단착오에 의한 「최악의 합작품」으로 볼 수 있다.
학생들은 「수업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문교부의 별도 유급조치가 아니더라도 학칙에 의해 수업일수 미달로 유급된다」는 경고를 엄포로만 속단했다.
기회있을 때마다 총학생회측은 『전원유급은 전례가 없으며 어떤 경우에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장담해 왔었다.
주동학생들은 자신들은 물론 말없는 다수 동료들의 장래까지 담보로 걸고 무모한 승부를 벌이다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게된 셈이다.
또 이번 사태의 1차적인 책임이 총장직선제와 학교발전위원회 구성이라는 학생들과의 약속을 저버린 재단측에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학생들은 재량권이 없는 학교측 아닌 재단측과의 직접 협상을 줄곧 요구했으나 재단측은 파국이 눈에 보이는데도 『총장선출방법에 대한 양보는 있을 수 없다』며 끝내 협상테이블로 나서지 않았다.
세종대사태를 「제2의 KBS사태」로 보고 공권력투입만으로도 「억지수업」이 가능하리라고 믿었던 당국도 비판을 면키 어렵다.
『우리가 강제로 공부하라면 하는 국민학생인줄 압니까.』
수업을 할 마음으로 등교했었다는 한 학생은 『정문에 늘어선 전경을 보는 순간 수업을 거부키로 결심했다』며 당국의 「공권력 만능주의」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무엇보다도 문교부가 사학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명분아래 제때 관선이사 파견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태가 이렇듯 곪아 터지도록 방치해둔 사실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사실상의 전원유급조치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된 이상 학생과 재단은 모두 한걸음씩 물러서는 슬기를 발휘해야 다음에는 「동반자살」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비극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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