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입국」은 사활의 과제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금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 단기간내에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과학ㆍ기술의 낙후임은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해의 급격한 경기둔화와 작년이래 지금까지 이어지는 수출부진을 겪으면서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상실한 우리 경제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과학ㆍ기술의 개발과 산업현장에서의 기술혁신뿐임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일 발표된 과학및 산업기술발전 기본계획이나 10일 대덕연구단지에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과학기술진흥회의는 정부가 기술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기술입국의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여져 그 의미를 높이 평가하고자 한다.
특히 기술인력공급의 확대를 위해 이공계대학 정원 비율을 높이고 과학ㆍ기술개발을 위한 정부투자를 대폭 늘려 민간기업을 포함한 연구개발투자의 대 GNP 비율을 지금의 2%내외에서 96년까지 3∼4%로 늘리겠다는 등의 내용은 고무적인 것이라 할수 있다.
문제는 이같은 청사진이 과연 얼마나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알맹이 있게 실천되느냐는 데 있다. 의욕적인 계획이 잇따라 발표되는 시점에서 지속성과 실천의지를 거론하는 것은 자칫 좋은 일에 찬물을 끼얹는 일로 오해를 받을 소지가 없지 않으나 치열한 계획이 실시도 되기전에 무산되는 예를 너무나 자주 보아온 우리로서는 계획 내용보다 실천의지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경제의 다른 부문에 관한 일은 덮어두고 과학기술개발에 관한 계획만 하더라도 작년 4월부터 계획수립에 착수해 지난 2월에 발표됐던 이른바 첨단산업기술개발 7개년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관계부처 사이의 의견대립으로 흐지부지 되어버린 것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17년전에 착수한 대덕연구단지가 지금까지 완공이 미루어져 오는 92년에야 공사와 입주가 끝나게 된다는 사실도 과학기술에 대한 정책과 실천의지를 의심케 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백가지 좋은 계획 보다도 한가지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또 한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관계부처 사이의 업무영역 싸움이다. 첨단산업 기술개발 7개년계획이 유산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전에 관계부처 사이에 충분한 협의나 협조가 없었기 때문임은 잘 알려진 일이지만 기술개발과 개발된 기술의 응용문제를 둘러싼 과학기술처와 상공부의 해묵은 영역분쟁은 기술개발 전략추진에 적지 않은 장애요인이 돼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다행히 이번 과학산업발전기본계획은 이같은 문제에 배려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경제기획원ㆍ과학기술처ㆍ상공부가 제각기 구체화 계획을 내놓거나 내놓을 예정으로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기술입국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며 관계부처의 생각을 내는데 그쳐서는 안될 국가경제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는 점을 당사자들이 깊이 깨닫고 또다시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과학ㆍ기술의 개발을 제품경쟁력 강화와 수출증대로 이어줄 역할을 하는 것은 기업이라는 사실이다. 기업이 스스로 기술혁신에 진력하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그 나라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미국의 예에서 보고 있다.
그것은 또 기업의 기술개발에 대한 의욕을 북돋우는 정부나 국민의 성원과도 함수관계에 있음을 지적해 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