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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호르몬 공포를 줄이려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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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근 방송된 '환경 호르몬의 습격'이란 프로그램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플라스틱류에서 흘러나온 환경 호르몬이 인체에 큰 해를 주고 있다는 내용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모양이다. 집 안의 플라스틱 제품을 모두 유리로 바꿨다는 사람도 있다. 잊을 만하면 등장해 사람들을 공포에 빠뜨리는 플라스틱의 환경 호르몬 문제. 정말 해답이 없는가.

환경 호르몬의 주범으로 꼽히는 플라스틱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일론 양말에서부터 대중화돼 지금은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이 됐다. 거실 장판, 벽지, 반찬 용기, 음료수병, 젖병, 옷, 생리대 등 플라스틱이 아닌 것이 없을 정도로 플라스틱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존재다. 플라스틱 제품 원료는 원래 기체나 액체 상태의 작은 분자지만 여기에 고분자 반응을 일으키면 거대 분자로 변화하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고체 상태의 플라스틱이 된다. 이런 플라스틱 고분자는 본질적으로 인체에 피해를 줄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분자 크기가 너무 커 인체 내로 침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체 상태의 플라스틱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했던 원료 중 일부가 거대 분자로 변하지 못하고 작은 분자로 남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체 침투가 가능한 작은 분자들이 고체 플라스틱 제품에 들어 있다가 우리가 걱정하는 환경 호르몬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혈관.인공심장.인공피부 등 인체 내 장기나 조직을 대체하는 플라스틱 제품은 어째서 이런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것일까. 정답은 정제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인체용 플라스틱 제품은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고분자를 합성할 때 발생하는 작은 분자들을 철저히 제거하는 정제 과정을 거친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거치기 때문에 의료용 플라스틱은 공업용 고분자 플라스틱에 비해 가격이 훨씬 비싸다. 따라서 생활용품 플라스틱의 피해를 줄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의료용 플라스틱을 제조할 때 사용하는 정제 과정을 일부라도 거친다면 플라스틱 제품의 안전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용 플라스틱처럼 완벽한 정제를 할 수는 없겠지만, 원료를 끓는 물에 담가 두거나 용매에 녹였다가 재침전시키는 과정만 거치더라도 불순물을 많이 제거할 수 있다. 가격이 다소 비싸지더라도 제조업체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환경 호르몬 문제는 상당 부분 예방이 가능하다. 플라스틱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제안을 한 가지 더 한다면 정부 차원의 제품관리 제도 개선을 언급하고 싶다. 플라스틱 제품은 높은 온도로 가열하거나 인체의 점막과 오랜 시간 접촉할 경우 유해물질이 녹아나올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유아들의 젖병, 어린이 장난감, 여성용 생리대 등에 대해선 세심한 주의와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이들 제품만이라도 의료용품 수준의 품질 관리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박상수 서울보건대 교수·의료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