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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새 청사, 일본 '본'자 왜 안 없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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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울시는 새 청사 디자인을 종전 장독 모양에서 태극 문양을 형상화한 모습으로 바꾸고, 최고 높이를 21층에서 19층으로 낮춘 새로운 건립 계획을 확정해 다음달 중 심의를 거쳐 3년 뒤에 완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관청이란 고유 기능뿐 아니라 관광 명소 역할도 겸하겠다는 서울시의 원래 구상은 지방자치단체들의 세계적 추세에 비춰 바람직하다. 그러나 근본 문제는 일제 청산이란 민족 과업과 건물의 입지 환경이다.

현재 서울시청 건물은 일제시대 상징의 형상적 아이콘이었다. '일본(日本)'에서 '일(日)'자는 조선총독부였던 옛날 중앙청의 평면도 디자인이었다. 그에 각운을 맞춘 대구 격이 서울시청으로, '본(本)자'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런 일제 잔재를 신주 모시듯 그냥 놔두고, 궁색하게 그 곁에 새 청사를 짓는다는 얘기니 딱한 노릇이다. 이는 주와 객이 뒤바뀐 난센스다. 당연히 현재 시청 건물 중심이 새 청사의 중심축이 돼야 한다. 남대문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주 도로에서 본 시각적 앵글의 흐름이 제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다. 새 청사의 가상도에서 보듯 그 배경의 고층 건물들이 새 청사 디자인의 앞모습과 스카이 라인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스카이 라인은 주요 건물의 개성을 살려주는 키워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새 건물은 애당초 제자리에 지어져야 한다. 없애야 할 일제 잔재를 피해 짓는다는 건 언어도단이다. 바로 인근에 30층이 넘는 건물도 있는데 19층 높이를 더 높여서라도 현재 시청만 한 실내 공간을 확보할 수도 있다. 나선형 3태극의 흐름을 더욱 강조하는 것뿐 아니라 새 건물의 위용을 보이고 상징적 스카이 라인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새 청사의 고층화가 바람직한 해결책이다. 새 청사의 디자인은 1~8층까지의 저층부에서 원통형의 고층부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같은 다단계식 설계 구조다. 건물 중심축이 무교동 쪽으로 치우쳐 있어 나중에 녹지 공간을 확보할 때 현재 잔디 광장과 유기적 연대성을 갖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잔디 광장이 위에서 봤을 땐 일본의 상징 '히노마루' 형태여서 시청 건물 평면도인 '본'자와 함께 일본 상징 그대로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원형 광장에서 열리는 각종 집회나 행사도 덕수궁에 가까운 쪽보다는 을지로 입구 쪽으로 유도하는 편이 주 도로의 원활한 교통 흐름에도 부합된다.

조선총독부의 상징이던 '일'자의 중앙청은 이미 오래전 철거됐는데도 '본'자는 그대로 놔두는 상태의 새 청사 디자인은 과거사 청산과는 거리가 한참 멀고 민족정기 회복 차원과도 맞지 않는다. 또한 불필요한 설계 변경의 땜질식 처방은 근본부터 배제하는 것이 디자인의 정석이다.

'본'자의 흔적을 지우려고 본체 꼬리에 불과한 본관 부속 건물의 태평 홀을 없애는 방안을 당국과 협의할 방침이라는 서울시 입장은 일본인도 웃을 '고양이 세수' 같은 소극적 미봉책이다. 근본적인 디자인 해결책도 아니다. 일제 잔재 정리를 서울시 새 청사 건립을 계기로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도 늦지 않다. 왜곡된 과거 상징을 미래 발전과 자존의 회복으로 승화하는 것이 현재 주어진 과업이다. 제대로 된 과거 청산에 관한 한 중앙정부와 지자체나 여야가 따로 없다.

유한태 숙명여대 교수·디자인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