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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이 정준호가 웬 조연이냐고 ? 세상에 주인공이 따로 있간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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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사진=김성룡 기자]

'거룩한 계보'(19일 개봉.아래 작은 사진)는 폭력 조직의 오른팔 치성(정재영)이 감옥에 가면서 시작되는 남자들의 얘기다. 치성은 죽은 줄 알았던 옛 동료이자 어린 시절 친구 순탄(류승룡)을 감옥에서 만나 기뻐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직은 다른 이익을 좇아 치성을 내치려 하고, 역시 친구이자 조직원인 주중(정준호)은 갈등에 빠진다. '두사부일체''투사부일체'를 거쳐온 배우 정준호(37.사진)에게 조폭 노릇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치성과 순탄에 비하면 한참 주먹이 처지는 조폭인 데다, 그 비중 역시 조연급이다. 그는 1994년 MBC 공채탤런트로 연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주연이었고, 충무로에 진출해서도 출연작 15편 중 12편에서 주연이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더니 좀 더 넓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번에는 조연배우 정준호다.

"골 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시스트하는 사람도 있다. 이 세상 사는 데도 주인공이 따로 있는 것 아니잖은가. 내 분량이 작다고들 하는데, 처음부터 그런 시나리오인 걸 보고 시작했다. 감독을 보고 결정했다."

-장진 감독을 신뢰하는 이유는.

"같은 소재라도 장진 감독은 진부함과 진중함을 적절히 섞을 줄 안다. 장진식 대사, 장진식 버라이어티가 독특함을 만들어낸다. 같이 일해 보니 사전 리허설을 아주 철저히 한다. 이른바 장진시스템인데, 해보니까 너무 좋더라. 대사.몸짓.표정이 모두 숙달되니 현장에서 우왕좌왕하는 일이 없다. 대신 리허설 때는 연기자를 우리에 가둬 두고 연습시키는 격이다. 나이는 젊지만 사람 다루는 능수능란함이 마치 40, 50대 같다. 한마디로 '여우'다. 사람이 재주 하나 확실하면, 다른 재주가 없게 마련인데, 연출에서 제작까지 고루 잘하는 점에서 장 감독은 천재과다."

-동료 배우들과의 궁합은.

"재영씨는 이른바 '장진사단'이고, 누구보다 장진 영화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저 사람과 앙상블이 잘될까 걱정도 했다. 나는 흔히 말하는 상업영화를 많이 한 편이니까. 그런데 12가지 다른 나물이 섞여서 비빔밥이 맛있는 게 아닌가. 이 영화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자가 어우러지는 점이 재미있다. 치성(정재영)은 계속 감옥에, 주중(정준호)은 밖에 있으니 사실 서로 같이 나오는 장면은 많지 않다. 그래서 더 강렬한 표현이 필요했다. 치성에게서 남자의 기가 느껴지더라. 정재영을 정말 잘 아는 사람이 만들어낸 캐릭터구나 싶다."

-'못 나가는 조폭'이라는 주중의 캐릭터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주중은 순박하면서도 엉뚱한 것이 깡패로 보기에는 어리숙한 친구다. 그런 성격으로 치성과 차별성을 두려고 했다. 건달 하기에는 마음이 연약한 편인데, 남자들의 경쟁심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 무엇보다도 전라도 사투리에 공을 들였다. 석 달쯤 연습했는데, 촬영할 때나 안 할 때나 늘 사투리로 말하면서 놀았다."

-그동안 흥행 성공작은 코미디가 많은데.

"살아가는 스타일이 낙천적이다. 내 인생철학이라면, 남한테 웃음과 즐거움을 주자는 것이다. 봉사활동이든, 영화장르든. 전에는 안 그랬다. 20대 초.중반에는 상당히 많이 방황했다. 대학 중퇴하고 웨이터.세차. 대리운전 정말 온갖 일을 해봤다. 그때는 세상이 나를 위해 있는 게 아니라 남들을 위해 있구나 싶었다. 종손이라 어려서부터 집안의 기대가 컸는데…. 나중에는 내가 배우를 하려고 이 방황을 했구나 싶더라."

-해외에 호텔도 경영하고, 제작사(주머니엔터테인먼트) 대표도 맡고 있다.

"배우로만 나의 가치를 평가받기는 싫다. 중요한 건 배우 이전에 인간이다. 얼굴에 분을 바를 때는 내가 가증스럽다. 나도 그냥 사람인데,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늘 남들의 시선을 받는다. 내가 너무 기름기가 낀 게 아닌가 싶으면 후배들 만나 소주 먹으며 마음을 잡고, 장애인이나 어려운 사람 돕는 일 하고 그런다. 이러니까 정치하라는 말들도 하는데, 참된 정치는 국회의원 배지가 아니라 봉사라고 본다."

글=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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