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청국장 맛 못 잊어|친절한 서비스…구미 돋워|삼보정(서울 여의도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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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여의도 바람은 직각으로만 분다』라는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여의도의 길과 빌딩은 직선이고 직각으로 나있다.
한국의 집은 오밀조밀하고 길은 꾸불꾸불하여 질서가 없어 보이면서도 한국적 멋과 풍류가 있지만 여의도는 분명 한국적 전통을 한군데서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서구풍의 거리로 조성돼 있다. 그래서 모처럼 여의도에 와본 사람들은 어느 이방의 도시에 들어온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나처럼 이곳에 생활의 터전을 갖고 있는 사람도 곧잘 이런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국회의원이란 신분이 숨돌릴 새도 없이 바삐 움직여야 하는 고된 직업이지만 요즘처럼 시국이 어수선해 정치에 피곤을 느낄 때면 더욱 먼 시절, 아득한 고향의 멋과 풍류가 그리워진다.
지난 11대 국회 때의 일이다. 야간국회를 끝내고 의사당 현관을 나섰을 때 밤 깊은 여의도 광경은 참으로 쓸쓸하고 황막했다. 어느 목로 집에라도 들어가서 텁텁한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때마침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약국이 있어 피로 회복제를 사 마시며 주인에게 『어디 소주한잔 할 곳 없겠느냐』고 물었더니 여의도1번지 종합상가 내에 있는 세칭「먹자 빌딩」이라는 곳을 소개한다.
이곳은 크고 작은 대중음식점이 1층에서 5층까지 70여개가 들어 있는데 그 가운데 「삼보정」((783)0890)이라는 청국장 전문점을 찾게 됐다.
이 집은 청국장(2천5백원)을 주메뉴로 해서 김치찌개(2천5백원) 등이 있는데 종업원 12명의 깔끔한 행주치마가 우선 구미를 돋운다. 청국장맛 또한 구수해서 토속적 정취는 물론 서민의 텁텁한 멋과 고향냄새를 물씬 풍겨준다. 이래서 삼보정을 자주 찾게된다.
이 곳에서 시민들과 어우러져 소주잔을 나누며 시국에 관한 이야기, 정치에 관한 이야기 등 우리네 서민들의 고달픈 삶의 면면들을 보고 느낄 수도 있다.
해질 무렵이면 30여개 테이블에 빽빽이 둘러앉은 샐러리맨·상인들과 마주 앉아서나는 언제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 정치활동의 적지 않은 보람을 찾는다. 진순범(국회의원·평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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