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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라마단으로 본 이슬람 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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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라마단(이슬람력 9월) 기간을 맞아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위치한 이슬람 성지 '알 아크사' 사원에서 기도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희수 한양대 교수 문화인류학

지구촌 곳곳의 15억 명에 이르는 무슬림(이슬람교도)은 지금 단식 중이다. 한 달 동안 날이 밝기 시작해서 해가 질 때까지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는 단식(라마단)은 이슬람이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교리다. 라마단을 통해 이슬람 문화를 공부한다.

◆ 라마단(단식월)이란=라마단은 이슬람력에서 9월을 말한다. 라마단은 알라(이슬람교의 유일신)가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무하마드(마호메트)에게 쿠란(코란.이슬람교의 경전)을 계시한 달이다.

무슬림은 9월을 신성하게 여겨 한 달 동안 낮에 단식하고 날마다 다섯 번씩 기도한다. 이는 신자에게 부여된 다섯 가지 의무 가운데 하나다.

라마단은 해마다 조금씩 빨라진다. 이슬람력은 윤달이 없는 열두 달의 순태음력이어서 1년이 태양력보다 11~12일 적기 때문이다. 33년을 주기로 단식일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셈이다.

해마다 라마단이 다가오면 나라마다 전문가단을 구성해 하늘에서 초승달을 맨눈으로 관찰한 뒤, 단식을 시작해 다음 초승달을 봤을 때 단식을 끝낸다. 그래서 나라별로 단식 시작 날짜가 하루나 이틀씩 다른 경우가 생긴다.

단식이 끝나면 다음 날부터 닷새간 축제를 한다. 축제 때는 서로 선물을 교환하며 친지들을 찾아 인사를 나눈다. 고향을 찾는 사람들로 교통이 혼잡하며, 헤어졌던 가족들이 모처럼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우리의 추석 풍경과 비슷하다.

◆ 라마단과 단식=이슬람은 평등과 나눔을 중시한다. 그래서 부자와 가난한 자, 권력이 있는 자와 약자가 모두 같은 조건에서 배고픔의 고통을 공유하며 죄를 뉘우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단식은 종교적 의무이며 사회적 관행이기도 하다.

단식이 시작되면 식당과 가게는 낮 동안 문을 닫고 직장에서도 근무를 단축한다. 음식만 먹지 않는 게 아니라 다툼도 자제한다.

평소 신앙심이 약한 사람들도 단식 기간은 철저히 지킨다. 그만큼 이슬람 공동체의 일원으로 동참하고 나누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회적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단식 기간에는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길거리에 모금함이 줄을 잇는다. 이슬람 사회에서 거둬들이는 희사의 대부분은 라마단과 이어지는 축제 기간에 이뤄진다.

◆ 무슬림의 일생=무슬림의 일생은 한마디로 알라의 이름으로 태어나 알라 곁으로 돌아가는 삶이다.

무슬림이 태어나는 순간 아버지는 자식의 귀에 대고 "앗살람 알레이쿰(알라의 평화가 깃들기를)"이라고 속삭인다. 7일째는 이름을 짓고 8일째는 할례(남자의 성기 끝 살가죽을 끊어내는 풍습)를 한다. 이때부터 아기는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성장한 뒤에는 중매를 통해 결혼한다.

무슬림은 재산을 늘리면서도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베푸는 가운데 진정한 삶의 보람을 찾는다. 재산 상속도 자식에게 모두 물려주지 않고 국가와 가난한 이웃, 가족들에게 3등분해 공평하게 나눠준다.

그리고 내세에 영원한 천국이 기다린다고 생각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신의 품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죽고 난 뒤에는 24시간 안에 매장하는데, 시신의 머리는 항상 메카로 향하게 한다. 그곳이 이슬람이 시작되고 알라의 집이 있는 곳이라고 믿어서다.

◆ 한국사에 남겨진 이슬람 문화=이슬람은 원래 우리나라에 매우 친숙한 문화였다. 멀리 통일신라 때부터 아랍인 무슬림들은 뱃길을 따라 한반도로 건너와 살았고, 우리는 그들에 의해 세상의 진귀한 물품과 앞선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경주 고분에서 발굴되는 많은 유물이 무슬림 상인에 의해 거래되던 것이었다. 토용(무덤에 부장하기 위해 흙으로 만든 인물상)과 유향.카펫 등 이슬람 문화권 상품이 신라에서도 널리 사용됐다.

9세기에는 이미 중국 동남부 해안에 수십만 명의 무슬림 상인 집단이 거주했고, 신라 사람들과 폭넓게 교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가운데 일부는 바닷길을 따라 신라로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 아랍의 많은 고전에도 무슬림들이 신라로 건너가 영구 정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슬람 문화는 고려시대와 조선 초까지 육상 실크로드를 통해 우리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려 말에는 개경에 이슬람 공동체와 모스크(이슬람 사원)까지 있었고, 조선시대에도 임금이 베푼 연회에 이슬람 지도자들이 초청돼 쿠란을 낭송한 기록도 보인다.

청화백자에 쓰이는 회청(푸른 채색을 올리는 안료의 하나)도 중앙아시아 이슬람 지역에서 생산돼 우리나라에 들어온 물품이었다.

이희수 한양대 교수 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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