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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회이후의 소련은 어디로/모스크바=김영희(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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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개혁의 최선봉에 서있는 소련시사잡지 「아가뇩」은 6월30일자 표지에 크렘린궁앞에 전함오로라가 위협적인 모습으로 정박해 있는 몽타주사진을 실었다. 그리고 사진설명대신 『이것이 마지막 결전…』이라는,1888년이래 공산주의자들이 공식행사때 합창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노래」 구절을 썼다.
오로라호는 1917년 10월25일 오후9시45분 레닌그라드의 네바강에서 황제의 동궁을 향해 공포를 쏘아 볼셰비키혁명의 신호를 올린 군함이다. 아가뇩지가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는 2일 개막된 소련공산당 28차대회가 역사의 분수령이라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 열흘동안 두눈 크게 뜨고 모스크바ㆍ레닌그라드ㆍ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와 하바로프스크를 둘러보았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소련의 운명을 좌우할 역사적인 공산당대회를 눈앞에 두고 있는 긴장감 같은 것을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 고작 텔리비전의 정치토론프로와 당내계파끼리의 모임이 활발할 뿐이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결전….』 아가뇩의 이 표지설명은 옐친의 급진개혁파,리가초프의 보수파,그리고 고르바초프의 중도파 모두가 자파의 출사표로 삼을만한 구호다.
아가뇩의 주필이고 개혁파의 투사인 비탈리 카로티치는 이번 공산당대회의 결과를 점치기가 어렵다는 전제를 달고는,그래도 28차당대회 이후의 소련은 다당제의 사회가 될 것이 확실하다고 말한다.
소련공산당은 지난 2월의 중앙위총회에서 이미 정치국의 폐지를 포함한 조직개편과 일당독재의 포기를 결정했다. 그 결정이 이번 당대회에서 공식확정된다.
2월의 중앙위총회 이후 각양각색의 노선을 표방하는 「정당」이 무려 60개이상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급진개혁파인 「민주강령」은 간부들의 특권폐지를 포함한 당의 전면개혁을 요구하고,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공산당을 탈당하여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고민은 결집력이 없고 덜 조직적이며 인물중심인 급진개혁파의 위협이 아니라 아직도 리가초프라는 상징적인 지도자를 업고 탄탄한 조직력을 가진 보수파의 저항이다. 고르바초프는 보혁결전과 그로 인한 분당을 막기위해서 연일 중재와 타협을 시도하고 있다고 들린다.
고르바초프의 정치적인 타산은 분명하다. 그는 이미 당과는 관계없는 실권있는 대통령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공산당은 살아남아도 이미 실세이기는 어렵다. 그래서 당서기장자리에서 사임하겠다는 암시를 계속 흘린다. 그가 러시아 공화국의 공산당창립을 지지한 것도 공산당으로부터의 급속한 민심이탈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8차공산당대회는 그것이 아무리 역사적인 것이라고 해도 고르바초프가 당면한 도전의 하나­우리식으로 말하면 「총체적난국」의 한측면에 불과하다. 당대회의 승자와 패자가 누구이든간에 상점에 빵과 고기와 소시지ㆍ비누ㆍ휴지ㆍ성냥같은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을 공급해야 하는 난감한 과제는 그대로 남는다.
작년 6월 식료품값을 알아본 모스크바시내 리즈스키 자유시장에 다시 가봤다. 고기ㆍ채소ㆍ과일 등의 식료품값이 최소 두배,어떤것은 네배까지 올라 있다. 6월13일 리즈코프총리가 빵ㆍ고기를 포함한 식료품값의 두배내지 세배인상을 전제로 하는 「시장경제5개년계획」을 소연방최고회의에 보고한 것을 계기로 시작된 매점열풍은 돈이 있어도 살 물건이 없기 때문에 진정되었을 뿐이다.
가격의 현실화 없이 시장경제는 실현될 수 없다. 시장경제로 가지않고는 경제개혁의 성공은 상상할 수 없다. 고르바초프의 선택은 무엇인가. 공산당을 분열없이 약화시켜 당정치국대신 대통령자문회의 중심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런 속셈을 모를리 없는 리가초프는 시장경제로 갈것인가,말것인가를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선동적인 요구를 들고 나왔다. 리즈코프총리가 엉겁결에 국민투표안에 찬성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가격인상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을 수 없는 국민투표에서 누가 찬성표를 던질 것인가.
카로티치도 거듭 강조한바지만 70년이상 길들여진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바꾸려면 폴란드가 겪은것 같은 기록적인 인플레를 한번은 겪지 않을 수 없다. 시장경제는 일시적인 희생을 의미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파괴없는 전승만을 기대한다.
물가 현실화를 통한 시장경제의 추진은 국민들의 신뢰를 받는 정부만이 할 수 있는데 고르바초프는 아직은 말은 많은데 실천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다가 금년말까지는 방향이 잡힐것으로 보이는 다당제도 경제개혁에 반드시 힘이 되어준다는 보장이 없다.
미국과 서구의 입장처럼 한국도 고르바초프의 개혁의 성공과 지위의 강화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려있다.
아가뇩의 표지가 상징하는 소련공산당 28차대회에서의 보혁 결전의 결과가 고르바초프의 지도력을 위협하고 이 나라의 「총체적 난국」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수교를 눈앞에 두고 있는 한소관계에도 깊은 주름살이 잡히지나 않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크렘린의 정치기상도를 지켜본다.<본사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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