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쭉날쭉' 이런 학생부로 어떻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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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 대전 D고 2학년 윤모(16)군은 지난 학기 윤리 과목에서 만점을 받았다. 한데 만점자가 내신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수(상위 4%까지)를 넘어섰다. 이 때문에 규정에 따라 만점자 전원이 2등급을 받았다. 윤군은 "학생들이 시험을 잘 보는 바람에 오히려 다른 학교 학생들에 비해 불리해진 셈"이라고 말했다.

또 "사회탐구 과목에서 5점짜리 문제 하나를 틀렸다가 내신 두 등급이 내려간 일이 있다"며 "이로 인해 학생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했다.

#2. 대구 A고에서는 지난 학기 고2 국어 과목에서 8명에게 1등급을 줬다. 하지만 상위 4%까지 1등급을 받게 돼 있는 규정을 감안하면 다섯 명(4.6명)에게만 1등급을 줘야 한다. 이 학교는 사회와 과학 과목에서도 여섯 명에게 1등급을 줬다. 편법이고, '등급 부풀리기'이지만 이런 일이 학교 현장에선 벌어지고 있다.

2008학년도부터 적용되는 학생부 9등급제의 신뢰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등급을 규정 이상으로 잘 주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1, 2등급이 아예 없는 학교도 있기 때문이다. 국회 교육위 소속 열린우리당 유기홍 의원은 12일 전국 48개 고교 1, 2학년생의 1학기 학생부 성적과 등급 자료를 공개했다. 16개 시.도에서 세 곳씩 무작위 추출한 것이다.

◆ 교육부 주장과는 딴판=교육부는 "수능 9등급제에선 성적 부풀리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해 왔다. 상위 4%까지 1등급, 11%까지 2등급 등 일정 비율에 따라 등급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해엔 "59개 고교를 조사한 결과 주요 과목에서 석차 등급 비율을 잘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 의원이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실태는 차이가 난다.

인천 B고는 고1 영어 과목에서 '인심'을 썼다. 규정상 다섯 명에게만 1등급을 줘야 하지만 8명에게 줬다. 9등급을 아예 안 준 학교도 있다. 제주 C여고에선 고2 대상 20개 과목 중 11개 과목에서 9등급 학생이 없었다. 반면 대전의 D여고는 국어.수학.영어 일부 과목에서 단 한 명도 1등급을 받지 못했다. 도덕 과목의 경우엔 3등급이 최고 등급이었다.

과목별로 1등급 수가 들쭉날쭉한 학교도 있었다. 대구 E고는 118명인데 과목별로 1등급이 2~8명이었다. 주요 과목일수록 1등급이 많았다. 원래는 4.7명이어야 한다.

◆ "90점 맞아도 4등급"=사회와 과학 과목에선 90점 이상을 맞아도 1, 2등급을 못 받는 경우도 많았다. 서울 F고에선 고1 학생 391명 중 120명이 사회 과목에서 90점 이상을 받았다. 이 중 30명은 4등급을 받았다. 같은 수의 문제를 틀려도 어떤 배점의 문제를 틀리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리는 셈이다.

교육전문가들은 "한 문제를 실수하면 내신 등급이 왔다갔다 하는 식의 시험은 너무 비교육적"이라고 지적했다. 예체능계 과목에선 성적 부풀리기가 여전했다. 광주 G고는 348명 중 10명을 빼곤 모두 80점 이상이었다.

유기홍 의원은 "2008학년도 대입안 성공의 관건은 학생부의 신뢰도가 높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정애 기자

*** 바로잡습니다

◆ 10월 13일자 17면 '들쭉날쭉 이런 학생부로 어떻게 …' 기사와 관련, 자료를 제공한 열린우리당 유기홍 의원은 "전국 48개 고교의 자료 중 대구.인천.제주 지역 7개 학교 통계는 학년 전체가 아닌 일부 학생(세 학급) 성적이어서 이를 근거로 학생부의 등급별 분포 상황을 판단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도 이후 확인했다"고 본지에 알려왔습니다. 유 의원에게 학교 통계를 제출한 교육부도 이런 점을 지적했습니다. 기사에 인용한 일부 사례는 이들 7개 학교 중 3개 학교의 것입니다. 학교 이름이 익명 처리돼 취재 과정에서 해당 학교에 확인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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