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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원료물질 중동 밀수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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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핵.생물화학 무기 원료 물질을 중동 지역에 몰래 수출한 무역업체 대표가 검찰과 국가정보원의 공조 수사로 구속됐다.

3년여째 플라스틱.화학용품 실험기기 등을 수출해 온 Y무역회사 이모(45)씨는 지난해 12월 초 중동의 한 수입업자에게서 거래 요청을 받았다. 금속 표면 세정제로 사용한다며 '포타슘 비플로라이드' 25t을 수입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씨는 곧바로 중국의 한 업체에 3만5000달러를 주고 이 물질을 수입한 뒤 12월 하순 5만2000달러를 받고 중동에 수출했다. 1만7000달러가 남는 장사였다. 그러나 서방 정보기관에 의해 핵 개발 관련 요주의 인물로 지목받는 중동인에게 이 물질이 넘어갈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이 국가정보원에 포착됐다. 국정원은 중동 국가에 수사관을 급파했고 포타슘이 수입업자의 손에 넘어가기 직전 모두 압수해 국내로 들여왔다.

포타슘은 산업자원부 장관이 지정한 전략물자로, 정부의 허가 없이 수출 제한 지역에 수출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물품 가격의 세 배 이상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이씨는 검찰 조사에서 "위험한 물질인 줄 몰랐다. 국내에서 처분하겠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씨는 벌금 100만원과 전략물자 수출 금지 행정명령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고 사건이 마무리됐다.

그러던 중 이씨는 올 5월 중동 수입업자로부터 다시 수입 요청을 받았다. 그는 수사 당국과의 약속을 어기고 수출 허가도 받지 않은 채 5월 31일 포타슘 비플로라이드 15t을 목재 방부제인 것처럼 서류를 꾸며 2만7500달러를 받고 수출했다. 이씨는 나머지 물질 10t을 경기도 고양시 성석동의 회사 창고 벽면에 쌓아놓고 밖에서 볼 때는 25t 모두를 보관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했다.

하지만 포타슘 비폴로라이드의 사용처와 이씨의 행적을 추적하던 국정원에 다시 꼬리가 잡혔다.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9월 초 관련 자료를 국정원에서 넘겨받아 수사에 들어가 12일 대외무역법 위반 혐의로 이씨를 구속기소했다. 이씨는 "포타슘이 어떤 용도로 사용됐는지 전혀 모른다"고 주장했다.

고양지청 이헌상 검사는 "전략물자가 핵 개발 우려 국가에 수출돼 핵무기 개발에 사용된 것이 확인되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통제되지 않는 국가로 낙인찍혀 외교.안보상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된다"며 "기업들은 수출하는 물자가 전략물자인지, 수출 지역이 수출 제한 지역인지 등을 산업자원부에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양=전익진 기자

◆ 전략물자(Strategic Item)=대량살상무기(WMD) 또는 무기의 제조.개발에 이용 가능한 물품이나 소프트웨어, 기술. 국제평화와 안전유지, 국가 안보를 위해 수출입이 통제된다.

◆ 포타슘 비플로라이드=우라늄 농축 촉매제로 사용되며 1995년 3월 도쿄 지하철 가스테러에 사용된 사린가스의 원료.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은 포타슘의 국가 간 거래를 엄격히 통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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