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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에 파시즘 ?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루마니아의 욘 일리에스쿠대통령은 파시스트가 아닌가.
이같은 의문은 우문이 아니라 이 불행한 나라의 장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
일리에스쿠는 물론 공산주의자며 지난해 겨울 차우셰스쿠를 몰아내고 집권한 구 국전선멤버 대부분이 과거 차우셰스쿠정부에서 활동한 인사들이다.
그들은 현재 루마니아에 공산주의자는 없으며 공산주의를 대신할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루마니아에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가 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서구식 민주주의에 강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일리에스쿠는 자신을 「좌익」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지난주 반정부시위자들을 무참히 진압할때 그가 사용한 용어는 분명히 스탈린식이었다.
일리에스쿠는 시위자들을 루마니아에 우익정권이 수립되기를 바라는 서구 우익세력의 사주를 받은 「파시스트」「악당」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일리에스쿠의 시위진압방식은 공산주의보다 파시즘에 더 가깝다.
그의 목표물은 소수 지식인·학생으로 구성된 정치적시위대 자체가 아니라 루마니아 국민들의 외국인 공포증을 자극시켜 자신의 정부에 대한 가상적을 사전 분쇄하는 것이었다.
공산당은 항상 당의 원리에 입각해 조직된 준군사적성격의 노동자조직을 가지고있다. 그러나 이번에 일리에스쿠가 광원들을 동원, 시위자들을 무력 진압한 것은 대중의 군중심리를 이용, 대중폭력을 불러일으키는 파시즘의 특징으로 20∼30년대에 널리 행해지던 방법이다.
일리에스쿠가 한 짓은 급진 포퓰리스트(대중인기영합주의자)들이 하는 방식의 호소였다.
광원들은 그동안 고통속에서 살아왔다. 그들의 생활수준은 19세기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70년도에 차우셰스쿠 치하에서도 「봉기」할 정도로 비참했다.
그러나 일리에스쿠가 이끄는 구국전선정부가 들어선 후 그들은 봉급인상과 식료품공급확대등 혜택을 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일리에스쿠의 충복이 되었던 것이다.
지난달 일리에스쿠의 한 측근인 겔루 보이칸 보이쿨레스쿠가 프랑스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매우 흥미있다. 그는 차우셰스쿠의 약식재판과 총살형을 집행한 인물이다.
그는 『루마니아의 원래 모습으로 회귀한다』는 루마니아의 오랜 전통에대해 언급하면서 소위 「현대」에 대해서 『적개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는 파시스트적인 냄새가 나는 말이다. 공산주의는 언필칭 「현대」를 내세우며, 완전한 미래에 대한 「선구자」임을 자부한다.
보이칸의 논지는 일견 타당성이 있다. 일리에스쿠는 정적들을 공격하는데 있어 제2차대전전 루마니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극우단체 「천사장 미카엘부대」의 추종세력들이 루마니아의 애국심을 부추겼던 것 같은 전략을 원용했다.
미카엘부대는 루마니아가 제도나 정책이 미흡해서가 아니라 애국적 인물의 부재때문에 쇠락하고 있다고 주장, 외세 특히 유대인들을 무차별 공격했다.
작금의 루마니아정정은 이미 여러가지 정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미카엘부대가 지녔던 독재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음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일리에스쿠와 그 추종세력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이번에 이를 「멋지게」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우익세력을 이용, 이번 고비는 잘 넘겼지만 그들은 앞으로 이들 우익세력 때문에 더 큰 곤욕을 치러야 할 것이 분명하다.
루마니아의 우익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일리에스쿠 세력들은 「오리지널」이 아니며 일시적 동맹세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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