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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오리발 心理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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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강유능 수사관은 한 은행원이 고객예금 5백만원을 빼내 쓴 뒤 '오리발'을 내미는 사건을 맡는다. 그는 긴급체포된 은행원을 보자마자 몇 마디 질문으로 범행을 자백 받는다.

문:너 은행직원 맞아?

답:예.

문:은행직원이 돈 5백만원 때문에 잡혀 와? 나가면 갚아.

답:(엉겁결에)예.

검사(김종률.2002년)가 쓴 단행본 '수사 심리학'에 실린 실제 사례다. 노련한 수사관은 "사회에서 인정받는 은행원이 별것 아닌 혐의로 걸려들었다"고 안심시키면서도 "당신이 범인임을 확실히 믿고 있다"는 고도의 심리전을 편 것이다.

범인은 항상 불안하다. 수치심.죄의식.발각공포 등에 시달린다. 그러면서도 처벌에 대한 두려움과 명예실추 같은 대가가 두려워 자백을 거부한다. 범죄학자들은 불안감과 대가 사이의 심리적 부등식(不等式)이 부인 또는 자백을 결정한다고 설명한다. '불안>대가'는 자백, '불안<대가'는 부인. 결국 불안감은 크게, 대가의 공포는 작게 만들어 자백을 유도하는 게 유능한 취조관이다.< p>

다음은 수사통(通)들이 얘기하는 오리발 돌파 비법. "피의자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몇 번이고 써보게 한다. 인생을 반추하다 보면 '양심'이 되살아나 죄의식을 갖게 된다."(법무부 고위 간부), "고위 인사일수록 전화번호부로 머리를 몇 대 때리면 효과적. 수치심을 일으켜 차라리 처벌을 택하게 한다."(전 검찰 수사관), "공범.고발자를 일부러 욕하면서 '당신은 큰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해 준다."(경찰청 수사 간부), "하루 중 인체에 멜라토닌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새벽 직전을 노려라. 긴장을 풀리게 하는 호르몬 때문에 오리발 '장벽'이 무너지기 쉽다."(법심리학자)

최돈웅 의원과 최도술씨, 박광태 광주광역시장. 모두 "한푼도 받지 않았다"고 오리발을 내밀다가 대검 중수부에 가서는 혐의 사실을 시인했다. 아마도 검찰이 조사과정에서 교묘한 심리전을 동원했을 게다. 하지만 오리발 격파 작전이 영 통하지 않는 인사들도 있다. 거물급 정치인일수록 더욱 그렇다. 수사관들이 살살 다뤄서일까, 정말 결백해서일까. 그도 아니면 아주 특별한 오리발 심리를 가진 덕분일까.

이규연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