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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통해 본 40년/좌담(재조명 6ㆍ25: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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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우익적 시각서 「탈이념」으로 변화/초기엔 체험,80년대 들어 역사적으로 파악/외세로부터의 독립ㆍ통일지향 문학이 90년대의 과제
6ㆍ25발발 40주년. 6ㆍ25는 통일이 되면 의당 역사속으로 들어가지만 DMZ가 엄존하는한 우리의 일상 전반을 규제할 수 밖에 없다. 어느 예술보다 상황과 삶에 직결된 문학은 지난 40년간 6ㆍ25로 인한 분단민족의 삶을 어떻게 형상화해냈으며 통일을 위한 문학의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가. 세대와 시각을 각각 달리한 문인 4명의 좌담으로 살펴본다.<편집자주>
□참석자
▲김윤식(사회ㆍ문학평론가ㆍ서울대교수)
▲김원일(소설가)
▲김명인(문학평론가)
▲박덕규(시인)
▲김윤식=6ㆍ25총성이 울린지 40돌을 맞습니다. 해방공간에서의 좌우익 갈등에 이어 양세력이 물리적으로 충돌한 6ㆍ25,그 이후 남북은 각기 서로 다른 체제를 굳혀갔지요. 때문에 남북을 공동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최상한선은 6ㆍ25로 볼 수 있습니다. 통일을 전제로한 그 어떤 이야기를 하든 6ㆍ25는 비록 물리적 충돌이긴 하지만 마지막 남북공동의 장으로서 중요성을 띠게 됩니다.
40년간 문학은 6ㆍ25를 어떻게 반영했으며 어느 방향으로 나가고 있나,또 앞으로는 어느 방향으로 나갈 것이며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가로 오늘좌담을 진행시켰으면 합니다. 먼저 6ㆍ25이후 40년간 축적된 우리 문학을 어떤 방법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를 살펴보도록 하지요.
▲박덕규=6ㆍ25,4ㆍ19,7ㆍ4공동성명,6월항쟁,광주민주화운동 등 10년단위로 굵직한 정세변화가 이루어졌고 정세의 변화주체연령층이 당대의 문학을 담당했다고 볼 때 10년단위로 잘라 정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김윤=분단문학,혹은 6ㆍ25관련문학을 세대별로 정리한 것이 기존의 방법 아닙니까. 그러나 남북양쪽이 상대방을 다 국가로 인정한 7ㆍ4공동성명,반공이데올로기를 불식시킨 6월항쟁,그리고 현재 진행중인 소련 및 동구권의 변화등 국내외 정세변화도 분단문학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합니다. 그러니 세대별의 자와 국내외 정세변화의 자를 동시에 들이대며 10년단위로 정리해 나가도록하면 어떨까요.
▲김원일=단순히 편의를 위해 10년 단위로 묶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굵직한 정세의 변화가 10년 단위로 이루어져 세대별ㆍ연대별이 용케 일치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분단 40년사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뭉뚱그려서 이야기를 시작하지요.
50년대,즉 전쟁 참전세대들의 작품에는 실존주의 냄새가 짙게 배 있습니다. 폐쇄된 공간,암울,절망 등 대안없는 비극만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전쟁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인지 문장도 거칠고 호흡도 가빠 작품에 안정성이 없었습니다.
○실존주의적 성향
▲김윤=작품이 안정성을 획득하지 못한 것은 6ㆍ25체험세대들이 일제하에서 교육받아 한글에 익숙지 못한데에도 기인하고 있다고 봅니다. 전후세대들의 구체적 작품들을 들어 보지요.
▲김원=물론 『흥남철수』를 쓴 김동리씨등 구세대들도 있었지만 『요한시집』의 장용학,『암사지도』의 서기원,『유예』의 오상원,『비오는 날』의 손창섭,『불꽃』의 선우휘,『파열구』의 이호철씨 등이 전후세대 작가들로 새롭게 등장,50년대의 분단문학을 이끌며 동족상잔의 비극을 우익적 시각에서 다뤘습니다.
▲박=50년대 나온 6ㆍ25시조는 구상의 『초토의 시』,유치환의 『보병과 더불어』,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시에 있어서는 전쟁의 참상 그 자체를 그리기보다 전쟁의 비극을 간접적으로 그린 것 같아요.
▲김명인=50년대 시쪽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소설쪽에서는 역사적 시각을 배제,폭력앞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느냐를 다룬 실존주의ㆍ역사적 허무주의가 전후 문학세대의 특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윤=50년대 문단은 염상섭ㆍ김동리씨 등 구세대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가운데 전후 장용학ㆍ손창섭ㆍ이호철ㆍ김성한ㆍ오상원ㆍ서기원씨 등 신세대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나는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고 「요한시집」을 썼다』는 장용학의 말처럼 서구의 전후문학인 실존주의 기법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시쪽에서는 김광림ㆍ전봉건ㆍ김규동ㆍ박봉우씨 등이 휴전선의 철조망을 주제로 이전의 서정성과는 다른 실험을 했습니다. 때문에 6ㆍ25는 새로운 기법이 모두 동원돼 그 참상을 문학으로 표현하게 해 우리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전통과 단절되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김원=전후세대 작가들이 민족사적인 관점에서 전쟁의 고통을 그린 것이 아니라 개인사적인 관점에서 내 자신이 당한 고통만을 그린 것이 한계로 나타납니다.
▲김윤=그렇다면 50년대는 전쟁으로 인해 남북이 이념의 벽을 앞세운 단절의 벽을 굳힌 상황아래서 문학은 서구의 기법을 수용한 실존주의ㆍ개인주의 등이 주류를 이뤘다고 정리될 수 있겠군요. 그럼 이제 60년대로 들어가 봅시다.
○허무주의로 흘러
▲김원=4ㆍ19이후 나온 최인훈의 『광장』은 50년대와는 달리 6ㆍ25를 중립적 입장에서 보려던 최초의 작품으로서 분단문학의 고전으로 꼽히고 있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4ㆍ19이후 조성된 짧았던 서울의 봄 그 자유상황에서나 가능했지 5ㆍ16이후에도 이런 작품이 나왔을까에는 회의적입니다.
▲김윤=4ㆍ19좌절로 인한 패배의식 때문에 60년대 전체가 허무주의로 흘렀지요.
▲김원=해방후 한글교육을 받은 한글세대 선두주자로 김승옥등이 나와 『무진기행』등에서 인간의 미묘하고 섬세한 심리를 묘사하기 시작한 것이 60년대 문학의 특징이라 봅니다. 이 한글세대들은 6ㆍ25를 상황에 내던져져 허우적거리는 개인상을 피상적으로 그리는 전세대보다 6ㆍ25를 개인적으로 이겨나가는 새로운 관점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김윤=소설에서 김승옥,시에서 황동규등 한글세대 순종들이 등장함으로써 문장도 심리적으로 되고 6ㆍ25도 고발수준이 아니라 내면화된 방향으로 나갔지요.
▲김원=60년대 한글세대가 나타나자 50년대 전후세대 작가들이 조락해버린 것도 특징입니다. 이것은 50년대 전후세대가 6ㆍ25를 통해 허무주의를 너무 빨리 성취한 역작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명=60년대 문학에는 6ㆍ25보다는 4ㆍ19의 좌절의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50년대 문학이 냉전 이데올로기를 강조했다면 60년대는 이데올로기만을 강조한 6ㆍ25를 일부러 회피,6ㆍ25문학은 보기 드문 것 같습니다.
▲김윤=50년대는 참전르포같은 소설이 있었으나 전후세대의 조락으로 60년대는 70년대 유ㆍ소년기 전쟁체험세대들의 문학을 위한 잠복기로 볼 수 있겠군요. 이제 70년대로 넘어가 보지요.
▲김원=70년대는 10대에 6ㆍ25를 체험한 세대가 폭발적으로 분단문제에 매달린 시대였습니다. 홍성원의 『남과 북』,전상국의 『아베의 가족』,황석영의 『한씨연대기』,이문구의 『관촌수필』,윤흥길의 『장마』 등 한두명 거명하기도 힘들게 70년대 모든 작가가 소년 시점에서 6ㆍ25를 다뤘습니다. 이들은 좌나 우를 분명히 구분할 수 없는 소년기 체험의 순수시각으로 전쟁을 바라볼 수 있었기에 차라리 6ㆍ25를 객관적으로 그려나갈 수 있었습니다.
▲김윤=유년기 시각은 불확실하고 판단력이 약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없습니까.
▲김원=물론 한계도 있습니다. 그러나 좌ㆍ우가 이분화되지 않은 객관적 시각으로 냉전이데올로기 혹은 반공이데올로기를 벗어난 공은 인정해야 합니다.
○객관적 여건 마련
▲김명=70년대가 비록 유신체제아래 억압의 시대였지만 동시에 그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튀어오른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또 20년이 흐르면서 6ㆍ25가 객관화된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작가들에게 비록 유ㆍ소년 시각적인 방법으로나마 6ㆍ25를 객관적으로 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유ㆍ소년적 시각은 역사적 관점을 확보하지 못하고 가족주의ㆍ온정주의 등 가족사회 화해로 나갈 수 밖에 없는 한계도 지니고 있습니다.
▲박=70년대는 또 6ㆍ25자체에 국한되지 않고 6ㆍ25이후 분단고착을 초래한 군사문화,냉전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이 문학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봅니다. 이것이 민주화운동과 맞물리면서 시에서는 고은ㆍ신경림ㆍ김지하씨 등의 저항시,혹은 민족시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억압에 대한 맞섬으로서의 문학은 80년대 광주를 기점으로 가위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죠.
▲김명=60년대 제기된 노동문제가 70년대 들어 계급문제로 폭발하고,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외세문제가 첨예하게 드러나면서 계급과 외세를 동시에 쥐고 있는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이 80년대 문학으로 볼 수 있지요.
▲김원=80년대 전쟁미체험 세대들의 작품은 체험이 없으므로 정서화와 관념화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봅니다. 가령 송기원의 『월행』,임철우의 『아버지의 땅』 등은 6ㆍ25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상당히 서정적입니다. 이에 비해 이문열의 『영웅시대』는 우측시각에서,김성동의 『풍적』은 좌측시각에서 6ㆍ25를 관념화시킨 작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명=좀더 젊은 세대들,예로 정도상ㆍ김영현 등에 오면 분단을 획책하고 있는 지배구조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 작품도 나오지요.
▲김윤=70년대의 유ㆍ소년기 전쟁체험세대는 세계의 공포를 알 수 있는,문학적으로는 지극히 행복한 세대였으나 미체험세대는 유년기의 기억조차 없어 서정성으로 흐르든가,경직된 관념으로 빠지든가,관념이 너무 경직돼 남한의 체제로서는 수용하기 곤란한 입장에까지도 갔다는 말이군요. 이제 80년대 구체적 작품으로 들어가 봅시다.
○너무 경직된 관념
8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6ㆍ25를 본격적으로 역사적 문맥에서 파악한 장편소설들이 나왔지요. 그 대표적인 성과로는 이병주의 『지리산』,김원일의 『겨울골짜기』,조정래의 『태백산맥』 등을 꼽을 수 있지요. 이 작품들은 빨치산을 다루며 6ㆍ25이전인 해방공간까지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김원=결국 해방공간의 소설적 작업은 남북에서 모두 제거돼 버린 남로당의 복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외세,즉 미소에 의해 제거된 남로당을 소설적으로 복원시킴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거기서 찾으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으나 이미 해체된 것의 복원이라는 점에서 역사성은 띨 수 있지만 미래를 향해 열려진 문은 아니라 봅니다.
▲박=80년대 작품들이 70년대의 것들에 비해 6ㆍ25를 총체적 시각에서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장편소설들이 역사적으로 민족모순을 되짚어가는 것은 민주화운동의 결실이자 사회과학적 인식의 축적에 기인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명=80년대 주요 장편소설들이 남로당을 복원시킴으로써 6ㆍ25를 외세에 의한 대리전쟁으로 보지 않고 내전으로 본 것이 특징입니다. 무산계급의 이해에 기초한 남로당의 빨치산 투쟁을 그림으로써 계급적 시각을 획득한 것은 성과로 볼 수 있지요.
▲김윤=80년대 주요작품들은 남의 민족주의,북의 북로당과의 매개개념으로서 남로당을 다룬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남로당이 통일의 모델개념으로서 의미를 가질 것인가,아니면 남과 북의 절충으로 통일을 모색한 것인가가 90년대 통일지향문학의 당면한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민중의 삶 형상화
▲김원=남로당의 정략ㆍ정책적 측면보다 혁명적 열정성이 문학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줍니다. 이런 혁명정신에 입각,자본주의의 도덕ㆍ윤리의 타락을 반성하는 것도 중요하리라 봅니다.
▲박=젊은이들의 문학운동도 정신성ㆍ순결성 획득에 모아졌으면 합니다. 젊은층들이 서사시 형식을 통해 아직도 전쟁중에 있고 남한은 해방돼야 된다는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이러한 문학이 통일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
▲김명=『태백산맥』 『겨울골짜기』에 1백%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이 작품들이 분단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중심자체에 정확히 접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문학은 자본ㆍ외세의 논리아래서 고통받으며 그것을 뚫고 나가려는 민중의 삶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해야 됩니다.
▲김윤=50년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문학의 중심은 분단문학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학적 전통이 90년대 새로운 세대의 문학을 짓누를 것 같은데 막상 그들은 6ㆍ25를 어떠한 시각에서 보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김원=젊은이들 사이에 극우든,극좌든 이념의 우상화가 두드러지는데 이것은 통일의 저해요소라 생각합니다.
▲박=일단의 젊은 문인들은 이념에 대해 극단적 혐오감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6ㆍ25에 대해 내가 책임질 일은 하나도 없다. 나에게 이념을 덧씌우지 말라는 탈이념주의로 나가고 있습니다.
▲김명=이념의 우상화든지,탈이념이든지 젊은층들 사이에 극단적 양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젊은층들엔 6ㆍ25자체는 이제 역사의 단계로 뒤밀렸습니다. 젊은이들은 민주주의 실현,외세로부터의 독립,통일 등 민족구성원이면 누구든지 거부할 수 없는 당대 현실의 지향점을 뚜렷이 해나가고 있습니다.
▲김윤=6ㆍ25문학에 대한 좌담이 한국현대문학사를 다훑어본 꼴이 되었군요. 그도 그럴 것이 분단이 우리의 일상을 규제하고 있고 문학양식은 규제된 우리의 일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장시간 제각기 독특한 시각으로 좌담에 임해주셔서 감사합니다.<정리=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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