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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대응 정부 혼선 … PSI 싸고 당정 갈등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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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안보 비상상황에서 청와대와 정부 내 외교안보 라인들 사이에 서로 다른 소리가 나오고 있다. 11일 오후 국회 본회의 북 핵실험에 관한 긴급 현안질문에서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답변하고 있다. 가운데 줄에 한명숙 총리(左)가 있고, 맨 뒷줄에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앉아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핵실험 발표 뒤 노무현 정부에서 대북 포용정책과 제재 방안을 둘러싸고 혼선이 잇따르고 있다. 국무총리와 통일부 장관, 국방부 장관의 목소리가 다르다. 어떤 외교안보 관계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발언을 번복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그래서 북핵 대응 능력을 우려하는 소리가 나온다. 안보 비상상황에서 국민적 단결이 절실한데 중심을 잡아줘야 할 정부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혼선은 당정 충돌→정치권 사분오열→국론 분열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애매모호한 태도와 발언이 혼선의 중심에 있다.

노 대통령은 핵실험 발표 날인 9일 "이 마당에 와서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가 10일엔 "포용정책이 핵실험을 가져왔는지 인과관계를 따져봤으면 한다"고 하다가 또다시 11일엔 "대화와 제재 두 개가 다 유효하다"로 바뀌었다. 포용정책을 포기할 것같다가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외교안보 라인의 고위 책임자들도 국회 본회의에 나와 서로 옆자리에 앉아서 다른 답변을 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왔다. 10일 한명숙 총리는 "포용정책이 북한의 핵실험을 막는 데 실패했다고 자인한다.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11일에도 "(포용정책을) 전면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정하고 수정할 시점"이라고 답변했다.

반면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포용정책이 폐기되거나 전면 수정돼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이 장관은 10일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개인적으로 북한이 핵 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증명했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노 대통령은 10일 "그동안 드러내 놓진 않았지만 꾸준히 노력해 왔으나 상황이 바뀌었다"고 했지만 같은 날 한 총리는 국회에서 "정상회담 개최와 대북 특사 파견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통일부 안에서도 미묘한 흐름의 변화가 있다. 통일부는 9일엔 남북 경협사업인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의 재검토 가능성을 시사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관망 쪽으로 바뀌었다.

양창석 통일부 대변인은 11일 "국내외적으로 대북 조치가 마련될 때까지 정책 결정을 한 게 없다. 방북 문제와 대북 민간사업은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라고 했다.

외교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대해 '참여 하겠다'는 취지를 밝히고 있지만 통일부 등 정부의 다른 부서들과 조율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불분명한 입장을 보임에 따라 생긴 정책의 공백을 외교안보 라인의 각 부서들이 서로 차지하려는 힘겨루기 아니냐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노 대통령이 어떤 쪽으로 입장을 최종 정리하느냐에 따라 관계 부처 책임자들의 대규모 인책이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정부 내 이해 당사자들이 사활을 걸고 자기 입장을 관철시키려 노력하는 것 같다는 게 국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김정욱 기자

*** 바로잡습니다

10월 12일자 3면 '사진 설명'에서 "가운데 줄에 한명숙 총리, 김승규 국정원장이 있고" 대목 가운데 김승규 국정원장은 없었기에 바로잡습니다. 사진의 해당 부분은 김 원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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