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와대 회동, 혼란 해소 시발점 돼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오늘과 내일 진행되는 노무현 대통령과 4당 대표의 개별 연쇄 회동은 국가적 혼란과 갈등을 풀어 나갈 시발점을 마련하는 장(場)이 돼야 한다. 불법 대선 자금 문제와 대통령 재신임 관련 국민투표 실시 여부, 이라크 추가 파병에 대한 찬반 논쟁 등으로 우리 사회는 엄청난 혼란에 휩싸여 있다. 정치 지도자들이 어렵게 만나 서로 주장만 내세우다 얼굴을 붉히고 헤어진다면 국민의 실망과 분노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우선 정치권의 발목을 잡고 있는 대선 자금의 족쇄를 벗어 던질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지금은 최돈웅 의원의 SK 비자금 1백억원 수수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나라당이 궁지에 몰려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선 자금 문제에서는 어느 당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정설이다.

대선 후 각 당이 선관위에 신고한 비용을 그대로 믿는 국민이 얼마나 있겠는가. 정치적 공방이나 주고받고, 시간이 지나면 잊어질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다간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총체적 불신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특검을 도입해서라도 각 후보 진영의 대선 자금 전모를 밝혀야 한다.

물론 대선 자금을 어느 기업이 얼마나 제공했는지 드러날 경우 기업과 경제에 미칠 영향이 작지 않을 것이다. 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 우려도 있다. 또 정치자금과 뇌물의 경계선이 모호한 현실에서 각 당과 국민이 수긍할 만한 처벌 가이드 라인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盧대통령과 4당 대표는 이런 문제점을 충분히 고려해 정치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스스로 사면하는 법안을 만든다는 것은 범법자가 자신을 사면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어떤 방식이든 국민의 뜻을 묻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대통령 재신임 국민투표 여부도 청와대 회동에서 매듭지어야 한다. 위헌 시비가 있는 데다 정치권에서조차 합의되지 않은 사안이라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 또 盧대통령은 이라크 추가 파병의 시기와 규모, 전투병 파병 여부 등에 대해 정부의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정치권의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