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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라피노교수가 내다 본 아시아공산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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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도 경제개혁 안할 수 없다”/내키진 않지만 한국을 합작 파트너로/외국에 눈뜬 젊은층 변화요구 거셀 듯/중국ㆍ베트남선 사회주의 경제 무용론 나와
미국의 아시아문제 전문가인 로버트 스칼라피노교수(미캘리포니아대)는 19일 북한은 동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경제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칼라피노교수는 이날 뉴욕에서 미아시아 협회가 주최한 「아시아공산주의의 미래」세미나에서 북한이 이미 해외관광객 유치와 합작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합작사업의 의미있는 발전은 여러 장애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스칼라피노교수는 또 북한 지도자들에게 가장 큰 딜레마는 경제개혁을 하면서 정치적 단결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는 중국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스칼라피노교수의 연설내용 요약.
서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시아 공산주의는 전쟁의 산물이다. 아시아 공산주의의 탄생은 마르크스가 처방한 형성기간에 비추어 미발육상태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기형적이었다.
오늘날 아시아공산국가들 가운데 몽고만이 볼셰비키시대의 산물로 소연방과 거의 같은 역사를 갖고 있다. 오늘날까지 몽고는 한족의 중국지배에 두가지 대안,즉 러시아 또는 일본에의 의존밖에 길이 없었다.
소련은 몽고의 경제에 엄청난 보조를 했고 엘리트층의 자녀들에게 교육을 제공했으며,인구가 지금도 2백만명밖에 안되는 이나라에 안보를 보장해 주었다.
이같은 배경에서 볼때 아시아공산국가 가운데 몽고만이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추구하려는 과정에 있음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침체된 경제를 구하기 위해 선진 시장경제로 전환하려는 과감한 노력이 진행중에 있고 일본이 이에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다른 아시아 공산국가에서는 동구와 소련에서 일어난 「사건」의 영향이 몽고와는 전혀 다르다. 북한ㆍ중국ㆍ베트남에서 이들 사건들은 우선 부정적 교훈으로 보여지고 있다.
사적으로 아시아 공산지도자들은 고르바초프나 다른 사람들에게 극히 비판적이지만 공식논평은 조심스럽고 의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북한은 공산체제의 강점과 약점을 함께 보여주는 좋은 예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변화는 지난 40년동안 극히 제한되었다. 권력은 피라미드식으로 김일성 일개인에 집중되어 있고 그의 아들이 후계자로 지목되어 이미 상당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당과 국가를 기능적으로 분리시키려는 초기의 노력은 한 개인이 여러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실패했다. 당의 통치는 지고한 것으로 사회의 최정상에 있다. 이런 점에서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완전히 조직화된 국가일 것이다.
그같은 체제의 한가지 이점은 단결이다. 북한시민의 대다수가 김일성과 그의 체제에 결코 충성적이지 않다고 말할 만한 어떤 증거도 없다.
고도의 고립과 사상교화는 강력한 무기다. 그러나 그같은 체제는 잠재적으로 취약하다. 북한 주변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고 있다.
점차 많은 북한인들,주로 젊은세대들은 새세계에 대해 알고 있다. 특히 해외에 나가 있는 외교관들과 동구나 소련에서 유학한 학생들은 더욱 그렇다.
그들의 시대가 올 것이다. 이미 당중앙위원회나 상급국가기관에는 상당한 수의 젊은이들,더 전문지향적인 사람들이 진출했다.
남북한간의 경제적 간격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는 인식이 북한인들 사이에 퍼지면 선진산업사회로 전환하려는 과정이 서둘러지게 될 것이다.
60년대 중반까지 북한은 현대화의 초기단계에서 스탈린주의 기법의 이점,즉 인적 및 자연자원의 동원,중공업 집중,소비의 엄격한 통제 등을 활용,생산성에서 남한을 앞질렀다.
그러나 현재 북한의 생산성은 남한의 7분의1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새로운 기술과 절연한채 좁은 시장에 한정된 독재경제를 위해 국가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경제적 교훈으로 남는다.
군비지출의 부담은 큰 희생을 가져왔다.
문제는 북한이 경제정책을 다른 공산국가들처럼 조정할 것인지의 여부가 아니라 언제 할 것이냐는 점이다. 이미 관광객 유치를 위한 광고가 시작되었고 합작사업이 호소되고 있다. 합작사업이 어느 정도 성공하기 위해선 많은 경제적 변화가 필수적일 것이다.
아마도 첫 의미있는 발전은 현재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남한과 이루어질 것이다. 현재 규모는 작지만 잠재적으로 의미있는 남북한무역이 제3국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북한 지도자들에게 큰 딜레마는 어떻게 경제적 변화를 이루며 북한의 적은 인구와 노출된 지정학적 위치를 부분적으로 보상함으로써 정치적 단결을 유지하느냐하는 점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북한사회 뿐만 아니라 사상개조와 고립을 통해 안정을 추구한 모든 다른사회에도 똑같은 딜레마였다.
이같은 위험은 이웃인 중국에서 예증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공산당독재가 실시되어 당의 권한은 국가위에 자리잡아 엄격한 통제가 대중수준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활동에 적용되었다.
초기의 성공은 괄목할만한 것이었으나 그 대가는 끔찍스러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악덕지주」나 「반동분자」로 분류되어 제거되었는지 알 수 없다.
중국은 이같은 잘못에 대한 큰 대가를 치렀다.
오늘날 거대한 모순이 주요 아시아 공산국들 위에 덮여있다. 차이는 있지만 모두 자본과 기술ㆍ경영기법을 얻기 위해 주요시장경제국들과의 교섭을 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세번째로 큰 공산주의국가는 베트남이다.
40년동안 끊임없는 전쟁을 치러온 베트남은 전쟁 당시 모든 정치적 수단을 동원했으면서도 평화시에는 정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지역에서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기 위해선 크메르 루주의 참여와 중국ㆍ베트남의 만족 등 두가지 조건이 필수적이다.
베트남 공산지도자들은 국내적으로 많은 난관에 봉착해 있다.
경제개방ㆍ개혁정책으로 어느 정도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베트남은 아직도 동아시아 최빈국중 하나다.
정치적으로도 중국과 같이 공산당 1당독재 원칙을 고수하고 있고 공산당은 부정부패와 무능력으로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베트남지도자들은 미국의 경제투자가 재개되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문제들은 베트남이 군사주의와 침략주의를 포기할 때 해결될 수 있다.
「아시아 공산주의」의 현위치는 우선 스탈린식의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이미 퇴조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비해 열세임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와 국가안보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하나 위기상황은 사회주의 특유의 「고립의 시대」가 지났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정치개혁과 경제원리 사이의 적절한 함수관계란 어떤 것인가」하는 질문이 늘 따라다녔다.
이와 함께 정치개혁을 어느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경제부흥을 이룰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도 만만치 않은 숙제였다.
우선 공산주의를 정치적으로 개혁하는 것과 이 체제를 아예 전복시켜버리고 서구식의 의회주의를 도입하는 것중 어떤 것이 더 현실적이고 바람직한가를 결정해야만 한다.
혹은 한국이나 대만에서 보는 바와같이 정치적으로는 제한돼 있으나 사회적ㆍ경제적으로는 복수체제가 인정되는 이른바 권위적 복수체제를 채택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
이런 문제들로 아시아 사회주의국가들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진통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점에서 자유진영이 권위주의 체계의 공산진영을 압도했다고 단언키는 어렵다.
하지만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레닌주의가 다시 소생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만은 명맥하다.
공산주의 국가들은 정치나 경제체제에 있어서의 다양한 변화를 통해 어떤 형태로든 명백을 이어갈 것이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공산진영이 쇠락의 길을 걷는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파멸」에 이르지 않도록 자유세계는 도움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공산국가들의 장래는 자유진영의 미래와 직결돼있다.
군축문제ㆍ경제부흥ㆍ환경오염 대책등 양진영은 순망치한의 관계로 공존공영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극단과 경색을 피해야 하며 인내와 자제심을 갖고 「현실」을 풀어나가야 한다.
역사는 다시한번 우리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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