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당의 존재이유/민주당 창당에 부치는 고언(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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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가 민주당 창당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실망이 큰 기성 정치판에 어떤 신선한 대안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때문이다.
3당통합에 대한 거부반응이라는 단선적 동기외에 아직 이렇다할 정치성향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8명의 원내의석밖에 갖지 못한 민주당이 그 이상의 정치집단으로서 정치판에 영향력을 미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창당 주도세력이 3당통합에 반기를 들고 야권통합의 기치를 내세웠을 때부터 소수의 움직임이상의 관심이 쏠렸던 것이고,진천­음성과 대구서갑구 보선때 유권자들이 예상외로 많은 지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보선에서 민주당이 얻은 표는 적극적인 지지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1노3김이 지난 2년동안 펼쳐보인 구태의연한 정치행태에 대한 혐오감의 표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기성 정치판에 대한 염증인 동시에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갈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창당의 날을 맞아 민주당 지도층은 스스로 자문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과연 그런 갈망을 겸허하게 인식하고 이에 부응하는 노력을 했는가. 국민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대답은 아마 아니다가 압도적일 것이다.
평민당과의 통합교섭이 결국 파탄으로 끝나버린 과정에서 보인 민주당측의 억지와 야권통합을 기치로 내세웠으면서도 끝내 창당을 결정한 배경을 우리는 새 정치를 모색하는 순수한 동기와 양립되기 어려운 행태라고 본다.
또 일단 창당을 결정한 후 총재단 선출문제를 놓고 잡음을 일으키고 경선이 결정된 후에는 상호비방ㆍ금품살포와 같은 구태가 그대로 재현되었다.
「민주화시대의 개막」을 주과제로 내놓았다면 당내 민주주의부터 실현해 보여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결정 과정에서 사당성이 강한 기성정당이나 마찬가지로 감투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이들이 과연 구각탈피를 해낼 의지와 도덕성을 갖고 있느냐에 의혹을 자아내게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같은 행태를 개탄하면서도 새로 출발하는 민주당의 체질을 싸잡아 매도할 생각은 없다. 정치인의 모임인 이상 어느정도 내부의 경합은 불가피하다고 봐 줄 수도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제 막 떡잎을 내밀고 있는 새싹 속에 들어있는 신선한 인자는 더욱 키우고 구습의 유전인자는 억제하는 노력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결코 또 하나의 기성정당과 같은 정당의 출현을 바라고 있지 않다.
문호를 개방해 새 인물을 영입하고 당내 민주주의의 전통을 확고히 다져나감으로써 새 면모를 보이는 것이 민주당의 존재이유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민주당의 첫 과제는 처음부터 내걸었던 야권통합을 실현시키는 일이 되어야 한다. 거여에 대해 균형과 견제기능을 다할 수 있고 지역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야권의 등장이 시급한 때다.
우리는 민주당 지도부가 선언한 세대교체,체질개선및 새 정치문화의 창조등 구호가 지금부터라도 실제행동으로 나타나는지를 주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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