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주변국 거론 안 해 … "갈 길 가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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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9일 오전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통해 "우리 과학연구 부문에서는 주체 95년 10월 9일 지하 핵실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322자 분량의 짤막한 보도였지만 1998년 광명성 1호 발사(8월 31일) 때 며칠 지난 9월 5일 노동신문을 통해 보도하고 7월 5일 미사일 발사 때 다음날 외무성 대변인 문답형식으로 공개한 것과 달리 핵실험 직후 곧바로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보도 내용은 ▶핵실험을 안전하게 했다▶방사능 유출 없이 안전하다▶100% 자체 기술로 이뤄졌다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핵실험이 미국이 '넘어서는 안 되는 선'으로 여기는 '레드 라인(한계선)'이었던 만큼 '신속한 발표'와 '짧고 단호한 전문'을 통해 북도 핵실험이 보통 각오로 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음달 7일로 예정된 미국의 중간 선거 직후 거세질 대북 공세를 염두에 두고 역으로 강수를 둠으로써 이를 무력화하는 발걸음이란 포석도 있다.

이번 보도가 이전의 성명이나 외무성 대변인 담화 등과는 달리 미국이나 주변국들을 거론하지 않은 것도 차이점이다. 북.미 관계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북한은 이전까지는 '미국의 태도에 따라서'라는 조건을 달아왔다. 북한의 핵 개발이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의 결과물인 만큼 이 정책이 달라지면 북도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점을 늘 강조해 왔다. 따라서 주변국을 거론하지 않고 레드 라인을 넘은 것은 더 이상 주변국 반응에 관계없이 정한 수순대로 '갈 길을 가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10월 3일 핵실험을 예고하는 외무성 성명 발표 때 "미국은 우리(북한)를 경제적으로 고립 질식시켜 사회주의 제도를 허물어 보려는 망상 밑에 온갖 비열한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우리에 대한 제재봉쇄를 국제화해 보려고 발악하고 있다"며 "미국의 반공화국 고립 압살 책동이 극한점을 넘어 최악의 상황을 몰아오고 있는 제반 정세하에서 우리는 더 이상 사태 발전을 수수방관할 수 없게 되었다"고 밝힌 것도 '우리 갈 길을 간다'는 것을 암시했다는 분석이다. 핵물질 추가 추출과 보유 핵무기 수 확대 등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는 향후 움직임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발표 형식이 정부나 외무성 성명 및 외무성 대변인 대답보다 격이 낮은 '보도'를 택한 점도 눈에 띈다. 주변국의 방사능 오염 우려를 염두에 둔 듯 방사능 유출이 없었다고 밝힌 것도 '레드 라인을 넘긴 했지만 피해를 주지 않았으니 흥분하지 말고 협상해 보자'는 뜻을 담은 포석으로 보인다.

정용수 기자

*** 조선중앙통신 보도 전문

온 나라 전체 인민이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에서 일대 비약을 창조해 나가는 벅찬 시기에 우리 과학 연구 부문에서는 주체95(2006)년 10월 9일 지하 핵실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과학적 타산과 면밀한 계산에 의하여 진행된 이번 핵시험은 방사능 유출과 같은 위험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핵시험은 100% 우리 지혜와 기술에 의거하여 진행된 것으로서 강위력한 자위적 국방력을 갈망해온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커다란 고무와 기쁨을 안겨준 역사적 사변이다. 핵시험은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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