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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해방 이후 발표작 詩 1편·산문 9편 찾아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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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국 근대 문학계에서 '언어의 연금술사'로 손꼽히는 정지용(1902~50) 시인의 시 1편과 산문 9편이 새로 발견됐다. 모두 해방 이후 작품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해방 후부터 1950년 납북될 때까지 정지용의 거의 알려지지 않은 활동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품을 발굴한 박태일(49.시인.경남대 국문과) 교수는 "일제 강점기 최고 시인의 명성을 얻었던 정지용은 해방 직후 좌익 계열에 참여했다 다시 우익으로 전향하는데, 그같은 굴곡진 삶과 함께 알려지지 않았던 정지용의 문학 인생 후반기를 이번 작품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월간지 '혜성'과 시 '의자'=새로 발견된 시의 제목은 '의자'다. 50년 2월에 발행된 월간지 '혜성'창간호에 실려 있다. 손소희씨가 발행인을, 전숙희씨가 편집인을 맡은 '혜성'은 시사.문예물을 중심으로 한 종합 교양지 성격의 잡지다. 현재 '아단문고'에 창간호와 제2,3호가 소장돼 있으며, 박교수도 별도의 창간호를 소장하고 있다.

'의자'는 모두 14도막.44줄로 된 긴 시다. 청춘이라는 삶의 시간성을 노래한 이 시는 한편으론 '비취새''홍옥''상아옥돌'같은 선명하고 아름다운 비유로 청춘을 그려내면서, 다른 한편으론 '향기 담긴 청춘'과 '냄새 없는 청춘', '비싼 청춘'과 '흔한 청춘'에서와 같은 대립적 양상을 통해 청춘의 상실에 대한 회한을 표출하고 있다.

이 시에 대해 박교수는 "마치 눌언(訥言)에 빠진 듯한 언어 상실을 유별나게 느낄 수 있다"면서 "뛰어난 언어의 조탁을 통해 식민지 현실의 암울함을 극복해 갔던 정지용이 해방 이후 좌.우익 대립 속에 겪었을 법한 혼란스러운 모습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눌변'의 양상은 정지용이 마지막 쓴 시로 꼽히는 '사사조오수'(四四調五首.50년 6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 순수 시인이었다가 해방 직후 좌파 계열의 조선문학가동맹에서 활동했고 다시 49년 말 전향했던 순탄치 않은 삶이 그의 손과 입을 얼어붙게 만들었던 것일까. 시 '의자'에는 역사의 격랑에 휩싸여 고뇌하다 말을 잊은 듯한 한 예술가의 자화상이 보이는 것 같다.

◇아동문학가로서의 정지용=정지용이 해방 이후에도 아동문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했음이 밝혀졌다. 그의 아동문학 관련 심사평문 5편이 아동문예지 '소학생'(47년 8월호, 49년 7월호), '어린이나라'(49년 5월호, 6월호), '여자중학생문예작품집'(49년)에 실려 있다. 해방 직후 정지용은 조선문학가동맹 아동문학분과위원장이기도 했다.

아동 수필 2편의 제목은 '어린이와 돈'('소학생', 49년 5월호)과 '어린이날, 5월5일'('어린이나라', 49년 5월호)이다. 수필에서 아이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정지용의 관심이 이채롭다. 좌담 기록 1편('어린이나라', 49년 1월호)에서는 담론을 이끌어 가는 정지용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이 밖에 나머지 산문 1편은 당시 전향문인이었던 정진업 시인의 시집 '얼굴'의 발문으로 쓰인 '시집 '얼굴'을 보며'(50년)의 육필 원고다. 박교수는 '새 발굴 자료로 본 정지용의 광복기 문학'이란 논문을 25일 경북대 우당교육관에서 열리는 한국어문학회(회장 김일렬) 전국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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