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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식씨 美에 권노갑 스위스은행 송금영수증 보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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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현대 측이 2000년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에게 줬다는 3천만달러(약 3백60억원)는 權씨 측이 제시한 스위스 은행 계좌로 송금됐으며, 송금 영수증은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의 미국 내 개인 금고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23일 밝혀졌다.

현대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 관계자에 따르면 金전사장은 지난 7월 조사 때 "정몽헌(鄭夢憲)회장 지시로 현대상선 미주본부를 통해 (權씨 측의) 스위스 은행 계좌로 3천만달러를 보냈다"고 진술했다.

金전사장은 "현대상선 임원 朴모씨에게 지시해 달러를 마련한 뒤 鄭회장에게서 넘겨받은 해외계좌번호로 송금하도록 했다"면서 "송금 영수증은 미국에 있는 내 개인 금고에 보관돼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金전사장은 지난해 9월 신병치료차 미국에 간 뒤 주로 LA지역에서 체류해 왔다.

문제의 해외계좌번호는 이익치(李益治)전 현대증권 회장이 2000년 1월 權씨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진 김영완(金榮浣.미국 도피)씨로부터 받아 鄭회장에게 준 것으로 이들의 진술을 통해 드러나 있다. 鄭회장은 자살하기 전인 지난 7월 26일 검찰에서 "金전사장에게 계좌번호를 주면서 '총선과 대북사업에 쓸 자금'이라고 송금 이유를 설명했고 며칠 뒤 金전사장으로부터 '송금이 완료됐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진술했었다.

鄭회장은 또 "이후 김영완씨로부터 돈을 잘 받았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들었고, 權씨도 나중에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이들의 이 같은 진술에 따라 영수증을 수사 자료로 확보하기 위해 7월 말 鄭회장의 보증을 받고 金전사장에 대한 출국금지를 일시 해제한 뒤 미국에 보내 영수증을 가져오도록 했다. 그러나 金전사장은 출국 직후인 지난 8월 3일 鄭회장이 자살하자 지금까지 귀국하지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金전사장이 영수증을 갖고 귀국하면 송금의 전모가 드러날 것"이라며 "그러나 현재 金전사장과 연락이 끊긴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金전사장이 귀국을 미룰 경우 강제 귀국시키는 방법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의 스위스은행 계좌에 대해서는 처음 이익치씨에게 계좌번호를 지정해준 김영완씨의 비자금 은닉처일 가능성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 계좌에 權씨 몫으로 보관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송금 영수증을 확보하면 계좌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權씨 측은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3천만달러를 줬다는 것부터가 거짓말이며 스위스 은행 운운하는 것은 정말로 황당한 얘기"라고 말했다.

은닉된 3천만달러를 두고는 權씨를 포함한 구 정권의 특정세력이 임기 이후를 위해 은닉한 비자금일 것이라는 추측마저 나오고 있어 규명이 필요한 상태다.

강주안.문병주 기자

◇스위스은행 계좌=예금주에 대한 완벽한 보안성 때문에 '검은 돈'의 정착지로 인식돼 있다. 스위스은행들이 '박해받는 약자의 재산을 지켜준다'는 취지에서 1870년대부터 비밀보장 전통을 만들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를 피해 유대인들이 재산을 맡기기 시작하면서 더욱 강해졌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독재자나 권력자들이 부정한 돈의 은신처로 애용하면서 투명성 문제가 제기됐고, 스위스는 1998년 권력자나 정치인들의 자금 거래 감시를 강화하는 등의 '돈세탁 방지법'을 제정했다.

검찰은 95년 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스위스 당국의 협조를 얻어 盧전대통령의 비밀계좌를 찾으려 했으나 실패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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