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작가 최완규 "작품밀도 떨어지는 것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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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청자들이 비판하고 있는 드라마 주몽의 문제점 상당수는 내가 꼼짝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나 자신도 작품에 만족할 수 없다."

40%가 넘는 최고의 시청률을 달리고 있는 MBC 드라마 '주몽'의 최완규 작가(42)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총 제작비 3백억원의 대작 드라마로 화려하게 막을 올린 주몽이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 작품의 밀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비난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한 듯 최씨는 인터뷰를 8일 경향신문이 보도했다. 최씨가 "(기사 나가면) 또 난리가 날 텐데…"라고 말을 흐리면서도 인터뷰를 수락했다고 전했다.

그는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는 여의도 한 오피스텔에서 여전히 주문분출하며 드라마 집필에 몰두하고 있었다. 지겹지 않으냐는 질문에 "습관이 돼서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씨는 첫마디부터 고해성사와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작품 밀도가 전작인 허준과 상도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단순 비교를 하자면 주몽은 작업 자체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사료도 적을뿐더러 허준과 상도는 주인공들이 극을 이끌어나가면서 할 일이 명확했죠. 허준은 환자를 고치며 의료 상황의 고민을 하면 됐고, 상도의 임상옥은 장사와 관련된 고민과 경쟁구도 속의 상술을 펼치면 됐습니다. 그에 반해 주몽의 경우 고구려 건국 이전에 부여에서 뭘 하고 가느냐가 명확하지 않아 고민이 컸습니다. 결국, 사람과의 관계, 즉 권력과 암투를 그릴 수밖에 없었어요. 밀도 있게 그렸다면 괜찮았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죠."

애초 의도와 다르게 주몽과 소서노, 예씨부인과의 멜로구도가 엉성해졌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는 덤덤했다. "주몽과 소서노의 운명적 사랑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상황이 못됐고 이는 작가로서 실패한 부분입니다. 사전에 좀더 치밀하게 계산했어야 하는데 주몽과 소서노가 만나는 시점을 앞당기다 보니 문제가 생겼죠. 부영과 주몽의 관계도 충분히 진행시키지 못했습니다. 부영이를 퇴출시킨 것은 그 친구(임소영)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작가로서 부영의 캐릭터를 더는 유지시킬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입니다."

즉, 부영이를 예씨부인으로 발전시킬 개연성이 부족해졌고 그에 따라 더 큰 드라마적 실수를 하기 전에 부영이라는 캐릭터를 뺐다는 설명이다. 새로 투입된 송지효의 캐스팅 논란에 대해 그는 "부영의 퇴출이 연기력의 문제가 아니었듯 송지효의 캐스팅 역시 크게 잘못됐다고 보지 않는다"며 "다만 신인배우이기 때문에 연기경험을 쌓는 일은 그의 몫"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수용할 만한 비판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다고 잘라 말했다. 가령 드라마에서 한나라가 부여보다 강하게 묘사되거나 부여의 태자가 현토성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 등이 중국의 동북공정을 도리어 도와주는 게 아니냐는 지적 등이다.

"드라마 주몽에서 중요한 건 고구려의 건국보다 부여가 처한 당시 상황입니다. 당시 우리 민족이 한나라보다 우위에 있다고 명료하게 나와있는 사료가 있다면 모를까, 제 기준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역사적인 역학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두고 마치 의식적으로 동북공정을 도와주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억지입니다."

또한, 빈약한 전투신과 관련해 "제작진이 최선을 다한 결과"라며 "대조영.연개소문 등과 비교를 하는데 그 경우 이미 몇 달 전 사전 제작한 것이고 드라마 중반이 지나 전투신을 찍을 경우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드라마 주몽은 총 60회 중 40회 분의 집필이 끝났다. 나머지 20회 분량에서는 주몽의 부여 탈출과 고구려 건국, 소서노와의 재회 등이 그려질 예정이다. 초미의 관심인 멜로 구도는 어떻게 전개될까.

"주몽은 유부남으로, 소서노는 과부의 상태로 결합하게 됩니다. 기본적인 멜로 감성은 가져가겠지만 멜로적인 운명에 휘둘려 드라마의 내용이 결정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구려 건국과 맞물리는 두 사람의 정치적인 결합일 수도 있을 테고…."

드라마 작가에게 시청률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존재다. 주몽은 비난에도 매회를 거듭하며 시청률 최고를 경신하고 있다.

"시청률이 높으니까 이왕이면 국민드라마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잘 써보자는 욕심도 있고, 반면 안이하게 그냥 끌고가는 것도 있어요. 제가 요즘 주몽 외에 벌여놓은 일들이 있다 보니 집중을 못 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올 초 드라마 작가들을 규합해 '에이스토리'라는 기획제작사를 직접 설립했다. 이를 통해 '크리에이터'라는 할리우드의 작가 시스템을 구축해볼 계획이다. 향후 남아있는 방송 계약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작가 겸 프로듀서인 크리에이터의 역할을 맡아 드라마 작가들의 작업을 통일하고 조율, 보다 한 차원 높은 드라마를 선보이겠다는 야심이다. 이미 '하이에나'(tvN) '에어시티'(MBC) 등 몇 편의 작품을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하지만, 글쓰는 게 너무 힘들어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드라마를 쓰는 동안은 최소한 말이 되는 이야기를 쓰자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주몽의 부여 탈출을 고민하고 있다는 그는 "사료에 따르면 주몽은 어머니와 예씨부인, 아들을 놓고 홀로 떠난다. 상식적으로 그런 상황에서 대소가 어떻게 주몽의 가족들을 살려둘 수가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말이 되게 쓰느냐가 고민"이라고 말했다.

디지털뉴스 [digit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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