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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관계개선 스포츠가 앞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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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한·소관계가 정상회담의실현과 멀지 않은 수교에까지 급진전됨으로써 관계개선의 전위역할을 한 양국간 스포츠교류가 한걸음더 나아가 앞으로 어떻게 확대되어 나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88서울올림픽이 양국 간 관계변혁을 이룩한 중요한 사단(사단) 이자 교류를 촉발시킨 동력임은 갈 알려진 사실이다.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정치조류는 냉전시대에서 동·서화합의 시대로 흘러갔고 한국으로서도 굳게 걸어놓은 동구공산권의 빗장을 푸는 일대 전환이 됐다.
이후 한국은 이미 스포츠에 관한한 동구공산권국가들과 「대사급관계」로 접어들며 체제와 이념의 장벽을 허물어뜨렸다.
한국이 공산권과 첫 교류의 물꼬를 튼 것은 지난61년 월드컵축구예선전을 계기로 유고와 상호방문한것이 효시나 소련과의 교류는 그 후 12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가능했다.
지난73년8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 한국은 처음으로 선수단을 소련에 파견했다.
소련 땅을 처음 밟은 선수들은 여자농구· 남자배구·테니스등 3종목 38명.
이를 시발로 지난해까지 세계선수권대회등 주요국제대회를 통해 상호 선수단을 파견·초청한 것은 무려59건에 달하고 있다.
한·소체육교류의 형식은 한국이 국제경기연맹의 회원자격으로 소련의 초청을 받아 참가하는 방식으로 실현됐으나 상호교류형식을 띤 것은 올림픽유치가 결정되고 서울에 대한 열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인 85년이 후였다.
그 이전 한국에서 개최되는 국제대회에서 소련을 초청한다는 것은 당시 국제 정세상 불가능했다.
서울올림픽유치가 결정된 81년 「바덴바덴의 영광」이전까지 한·소 체육교류는세계선수권대회,국제올림픽위원회(IOC)총회등 각부 문에 걸쳐 10건에 불과했다.
「바덴바덴」 이후도 미국이 모스크바올림픽을 보이콧했던 후유증이 국제정세를 엄습하던 시기여서 LA올림픽은 물론 서울올림픽의 정상적인 개최마저 장담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84년7월 노태우 (노태우)당시 올림픽대회조직위원장, 이영호 (이영호) 체육부장관, 김운룡 (김운룡) IOC위원등 한국고위인사는 LA에서 소련 콘스탄틴 스미르노프 IOC위원, 사이클연맹회장이자 체육부차관인 발레리 시세예프등 소련체육지도자와 첫 접촉을 갖고『소련이 올림픽정신에 따라 서울올림픽에 참가해주길 바란다』는 정중한 인사말을 전했다.
2개월후인 84년9월 LA올림픽보이콧으로 LA대회에 불참했던 소련 그라모프체육부장관이 잠실운동장개장기념행사 참석차 소련고위관리로는 서울을 첫방문, 한·소스포츠해빙을 알렸다.
85년3월 소련 피겨스케이팅시범단이 역사적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았고, 85년9월 서울세계유도선수권대회를 계기로 한·소체육교류는 봇물처럼 걷잡을 수없이 터지기 시작했다.
한·소체육교류의「원년」이라 할 85년에만 소련고위체육인사·선수단이 8차례나 내한, 새로운 한·소시대를 열어갔다.
노태우조직위원장이 IOC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베를린을 방문했던 85년6월, 동구권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서울아시안게임이 열린 86년4월, 서울올림픽의 소련참가를 암시하는 중요한 실마리인 한·소고위 체육인사접촉이 서울의세계올림픽연합회(ANOC)총회에서 이루어졌다.
박세직 (박세직) 체육부장관은 그라모프체육부장관과서울몰림픽의 「모든것」을 협의했다.
한·소고위관리의 세번째 접촉은 87년4월 서울 국제체육기자연맹(AIPS)총회에 소련체육계의 실력자 가브릴린체육부차관이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됐다.
가브릴린에 이어 87년7월 소련 국가올림픽위원회부위원장인 아나톨리 클레스프가 소련NOC대표단을 이끌고 내한, 한국측에 구체적인 참가조건을 제시하면서 소련의 올림픽참가가 가시화된 것이다.
87년12월 마지막으로 가브릴린체육부차관이 NOC대표단을 이끌고 두번째 한국을 방문, 급기야 소련은 그라모프장관이 서울올림픽참가를 소련TV를 통해 공식 발표했다.
아무튼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본궤도에 오른 한·소체육교류는 주요대회참가, 국제회의 상호참가, 체육인사 파견및 초청, 전지훈련등 73년 첫 교류이후 지난해까지 1백1건에 달하고있다.
오는11월 내한하는 니콜라이 루사르체육부장관과 스포츠의 대사급관계라할 체육교류협정을 앞두고 있는 한국은 이미 소련과 축구배구·핸드볼·승마·역도·레슬링·양궁 등에 대해 매년 정기전을 벌이기로 하는 등 양국간 체육교류는 자유진영 국가들보다 더 활발하게 펼쳐질 전망이다.
한국에대한 소련정부의 확고한 입장을 읽을 수 있었던것은 지난해9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한민족체육대회 때였다.
북한은 양형섭 최고인민회의의장을 소련에 로비시켜 끈질긴 방해공작을 폈으나 소련은 오히려 우리항공기를 소련에 착륙시켜 사할린동포까지 모국방문을 허용하는 결정을 내린것이다.<방원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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