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취재일기

핵무기가 민족의 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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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연휴의 길목에 터져 나온 북한의 핵실험 성명(3일)은 억지스럽기 짝이 없다. 북한 외무성이 심혈을 기울여 핵개발의 당위성을 나열했지만 논리 구성이 어설프고 엉성하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지도를 받는 북한 정부의 설득력이 고작 이 정도인가.

성명은 7월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유엔안보리의 대북결의(1695호)를 거론했다. 외무성은 "미국은 강도적인 안보리 결의 채택으로 우리에게 사실상 선전포고를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의 동맹인 중국마저 찬성 표를 던진 결의안이다. 북한 외무성 관리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당국은 중국이 미국의 강압 때문에 찬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인가.

성명은 또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 핵전파 방지 분야에서 국제사회 앞에 지닌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북한은 2003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 무엇이 '책임 있는 핵보유국'인가.

'핵실험 예정'을 천명하는 글에서 "조선 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문장이 들어간 것은 비논리.자가당착의 절정이다.

물론 미국과의 협상이 자기 뜻대로 되지않는 평양 측의 답답한 심정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명절에 주민에게 특별 배급조차 하지 못하고, 엄청난 수해 복구도 늦어져 주민이 동요한다니 절망감도 클 것이다. 지난해 9월 북핵 6자회담 공동성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대북 금융제재로 분위기를 험악하게 몰고간 미국 부시 행정부의 잘못도 있다.

그렇다고 툭하면 비논리.자가당착의 억지 주장에 핵 위협을 얹어 동족을 불안하게 하는 건 용납될 수 없다.

지난해 2월 설날 연휴에 나온 핵보유 선언(2월 10일)에 이어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하는 건 북한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우리 민족끼리'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핵무기가 민족의 안전을 지키는 믿음직한 전쟁억제력이 될 것"이란 허튼소리에 귀기울여 줄 남녘 동포는 없다.

북한은 핵실험을 위한 기술력과 준비를 모두 갖췄다. 남은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결행의지다. 핵실험이 성공한다 해도 국제사회의 천덕꾸러기로 낙인 찍힌 뒤 고난의 가시밭길을 영원히 걸어야 한다는 걸 북한 지도부가 깨닫고 결단을 내렸으면 한다. 핵실험 계획을 철회한다는 북한 외무성의 성명을 기대한다.

이영종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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