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바람」 소 정치판도 “흔들”/제2인자로 영향력 증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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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고르바초프입지 상대적 약화/연방서 분리독립 여부가 가장 큰변수
소련정치의 이단아 보리스 옐친이 소련최대의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앞으로 소련정치에 큰 변화를 몰고올 사건임이 분명하다.
이번 당선으로 옐친은 고르바초프에 이어 사실상 소련의 제2인자로서 앞으로 소련정치무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고르바초프는 이번 선거에서 옐친의 당선을 막기위해 무척 고심해왔다. 자신이 직접 천거한 후보를 사퇴시키면서까지 옐친의 과반수 득표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며,러시아공화국인민대회에 직접 참석,옐친의 정치적 노선이 사회주의를 파문시키는 것이며 연방을 분열시키려 하고 있다고 신랄히 비난했다.
이에 대해 옐친은 대중정치인으로서의 자신의 특기를 십분 활용,대의원들의 직접 설득에 나서는 한편 최근 고르바초프가 발표한 시장경제개혁안이 일반서민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난,대의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번 선거가 고르바초프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옐친당선으로 결말이 난것은 일단 옐친자신의 인기와 능력에 대한 대의원들의 기대의 표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입지가 그만큼 약화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는 7월 제28차 공산당대회 참가자격을 놓고 최근 실시된 당대의원선거에서 고르바초프는 겨우 61% 득표에 그쳐 그의 인기가 최근 크게 하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바 있다.
뿐만 아니라 「점진적 시장경제」로 가기 위한 경제개혁안이 최근 발표되면서 소련 전역에서 물건사재기열풍이 부는 등 일종의 경제공황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고르바초프에 대한 반대분위기가 팽배,이번 선거에서 옐친승리로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다.
이번 선거로 옐친은 급진개혁파 정치지도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 한편 더 나아가 고르바초프의 강력한 정치적 라이벌로서 위치를 다지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관계가 처음부터 나빳던 것은 아니며,오늘의 옐친은 사실 고르바초프가 만들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르바초프는 85년 당시 스베르들로프스크주 당 제1서기였던 옐친을 모스크바로 불러 모스크바시당 제1서기,중앙위서기,그리고 정치국후보위원으로 기용했다.
당시 옐친은 페레스트로이카의 열렬한 추종자로 고르바초프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그의 후계자로까지 지목됐다.
옐친은 최근 고르바초프가 개혁주의자로서 의지를 잃고 보수주의자들과 타협하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비판,그동안 지속돼온 두사람간의 인간관계마저도 상당히 퇴색해가는 상태다.
한편 이번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선거는 현재 소련이 안고있는 가장 큰 문제인 민족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어 앞으로 그 귀추가 주목된다.
발트해연안국가들의 탈소분리독립을 시발로 촉발된 소련내 민족독립 움직임은 중앙아시아 각국,백러시아ㆍ우크라이나를 거쳐 드디어 소련최대인 러시아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외신은 이번 러시아공화국 인민대회가 러시아의 정치ㆍ경제ㆍ법적 주권확립을 위한 「국가주권선언」을 채택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옐친은 『앞으로 러시아는 사회ㆍ경제ㆍ정신적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라고 말하면서 연방으로부터 분리독립은 생각지 않고 있다고 못박고 있으나,이 문제는 앞으로 소연방의 장래를 결정할 중요변수가 될 것이 분명하다.<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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