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빈영세촌 사람들이 한푼두푼 돈을 모아 「달동네장학회」를 탄생시켜 마을사랑의 귀감이 되고 있다. 서울시내의 대표적 달동네인 봉천2동의 주민들 1백50여명이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푼푼이 모은 돈 7백만원의 기금으로 5일 오후 「봉천2동 장학회」를 탄생시켰다. 25일 오후3시 봉천2동 봉천예식장에서 벌어진 장학회 결성모임에는 그들의 땀과 애환이 담긴 이 장학회가 날로 번창해져 자라나는 「마을의 새싹」들이 다시는 부모들이 겪었던 가난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많은 주민들이 참석, 진한 감동을 주었다.
이 「달동네장학회」의 결성이 구체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l월 봉천2동 파출소 김필홍경장(45)이 제안하면서부터.
김경장은 4년동안 이 마을에 근무하면서 가장 시급한 것이 2세들의 충분한 교육조건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지난 65년 수해 때 여의도와 동부이촌동의 수재민들이 8평짜리 무허가 판자촌을 지어 이주하면서 형성된 봉천2동은 관내에 중학교는 커녕 국민학교도 하나없는 교육불모지대.
김경장은 차 길을 몇 번이나 건너 멀리 통학하는 이 동네 학생들의 번거로움은 물론, 가난 때문에 대학진학의 꿈을 포기한 채 절망에 빠져 본드를 마시거나 각종 범죄에 빠져드는 청소년을 접하면서 장학회결성의 뜻을 굳히고 이 동네 강동수동장(54)과 몇몇 동네 어른들에게 이 뜻을 전달, 흔쾌히 동의를 얻어냈다.
이 장학회결성소식은 곧 마을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 2월에 구성된 추진위원회(위원장 이종렬·48·개인사업)에 기금이 답지하기 시작했다.
리어카 고물행상·건축노동자는 물론, 파출부·연탄가게아저씨·구멍가게아주머니 등 달동네 사람들은 무엇에도 비견될 수 없는 그들의 소중한 땀이 배있는 장학금을 작게는 몇 천원에서 많으면 5만원까지 선뜻 희사, 장학회를 추진하는 사람들의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3평짜리 조그마한 창고에서 연탄가게를 하고있는 김덕환씨(44·봉천2동94)는 달동네 꼭대기까지 지게로 연탄배달을 해 한달 수입이 20만원이 조금 넘는 형편이지만 『2세들을 훌륭히 교육시키자』는 뜻을 전해 듣고는 푼푼이 모아둔 2만원을 기꺼이 내놓아 장학회결성에 참여했다.
정부에서 매달 지급하는 쌀 20kg과 부식비 3만2천원으로 근근히 생활을 해나가는 거택보호자인 이동네 강성봉노인(73)은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중에도 부인(70)으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부식비에서 1만원을 절약, 장학금으로 내놓아 보는 이의 가슴을 짜릿하게 했다.
이 동네에서 월세 방을 얻어 살며 모 술집의 여급으로 나간다는 한모양(24)은 『비록 떳떳이 번 돈은 아니지만 정 많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동네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싶다』 며 5만원을 선뜻 내놓았다.
한평반짜리 복덕방인 복지사를 운영하는 김진섭씨(60·봉천2동산94)는 『가난 때문에 고교를 마치고 직장에 다니는 외아들이 학교를 다닐 때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며 얼마 되지 않는 수입에서 1만원을 쪼개내기도 했고 파출부로 일해 번 돈을 하루 5백원씩 저축, 1만원을 낸 김선숙씨(41·봉천2동7) 도 눈에 띄었다.
이 동네 강동수 동장은 『현재 7백여만원의 장학금이 모금되었으며 연말까지는 1천만원 이상의 기금이 모일 것으로 예상돼 이 기금을 활용, 성적이 우수하지만 가정형편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없는 주민의 자녀들을 선정, 장학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허가건물 1천여동, 영세민 4백52가구로 상징되는 달동네사람들의 따뜻한 정성으로 만들어진 봉천2동장학회는 날로 각박해지고있는 도시의 공기 속에서 마을사랑과 인정의 훈훈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