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면옥(강원도 인제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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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한호선 〈농협중앙회장〉
음식을 가리지 않는 성격인데다 동분서주해야 하는 자리 탓으로 단골음식점을 정해두고 다닐만한 여유가 없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지나는 길에 가끔 들르는 곳이 전혀 없지도 않으니 그 중에서도 산촌의 푸근함을 맛으로 느끼게 해주는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상동3리의 막국수 집이 나에겐 역시 제일인 것 같다.
인제군농협에서 1백50m쫌 서쪽에 자리한 「남북면옥」(0365 (461)2219)은 막국수의 이미지와 걸맞게 허름하고 한가한 시골음식점이다. 그러나 그집의 70대 할머니가 50년대부터 4O년간을 다듬어온 비법을 한껏 발휘해 투박스럽게 내놓는 막국수는 토속의 제 맛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화전민의 구황음식(흉년에 뚱딴지·강아지풀·피 등을 식품으로 이용함)이 갖는 분위기와 진가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1백% 메밀만으로 뽑아낸다는 국수발은 메밀특유의 퍼석퍼석함과 향미를 물씬 풍기는데, 요즈음 막국수인지, 냉면인지 분간 못할 정도로 개량(?)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지난60년 군대 사범시절 허기진 배를 채우려 친구들과 처음 찾은 그 집의 그 맛을 잊을 수 없어공사간에 인제를 지날 때면 나는 때를 가리지 않고 그 집에 들러 지난날의 향수에 젖음과 더불어 강원도사람으로서의 입맛을 되살리곤 하는 것이다.
사철 내내 땅속 깊이 파묻은 20여 개의 큰 독에서 푹 삭은 갓김치와 그 국물로 말아 내놓는 막국수(1천5백원), 그리고 비법으로 기름기를 제거하여 국수 물에 삶아내는 암퇘지 제육(3천원)에 소주를 곁들이며 설악의 풍치에 흠뻑 취하는 멋이야말로 일품이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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