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평론가 김병익씨 문학지 기고 통해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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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우리의 문학이 이제는 어떤 이념으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최근 발표한 평론 「새로운 지식인 문화를 기다리며」(『문학과 사회』여름호)에서 우리 문학에 만연돼 있는 좌·우, 보수·혁신의 대결구도가 지식인의 삶과 정신을 어떻게 억압하고 있는가를 80년대 대표적 작품을 통해 분석하고 이제 정신의 진정성을 탐구하기 위해 작가의 선입견이나 구호제창 같은 유행적인 사고로부터 벗어나야 된다고 결론지었다.
김씨는 80년대 문화의 주목할 성과로 지적 자유의 획득과 마르크시즘 등의 진보적·사회과학적 인식체계 수용을 꼽고있다. 이 성과로 인해 비로소 우리 소설에도 좌파 지식인의 새로운 등장이 가능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8·15해방으로부터 한국전쟁에 이르는 우리 현대사의 첨예한 문제적 시기를 다루고 있는 대하소실 이병주의 『지리산』과 조정래의『태백산맥』이다.
『지리산』은 진보적 지식인들과 그들의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현실론·민족주의론, 그리고 공산주의의 실제 역사에 근거, 그들의 이념에·반박을 가하고 있는 우파 지식인들 사이의 지적·이념적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소설의 중반이후 주인공이 입산 투쟁할 때부터는 지식인 소설로서의 성격을 잃었다는 것. 즉 한 좌파 이상주의자의 현실적 투쟁만 그림으로써 좌·우 사이의 이념적 갈등이 실종됐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태백산맥』은 좌·우 및 중도파 지식인들을 등장시켜 토론과 그들의 삶을 통해 각자의 이념을 전개하고 그것들이 실체의 현실과 어떠한 관계를 맺는가를 구체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빨치산에 가담한 사람이나 그 가족에 이르기까지의 좌파들은 한결같이 건강하고 정당한 긍정적 인물로 설정된 반면 우파는 대부분 퇴폐적이고 동물적이며 타락한 부정적 인물로 그려져 독자의 이념적 선택의 방향은 너무 뻔해지고 때문에 그 선택을 위한 독자의 자유를 제한시키고 있다는 것이 김씨의 지적이다.
김씨는 좌든, 우든 작가의 편향된 시각과 심리상태는 지적 사유에 자유로움을 주기보다 어느 하나의 전제된 결론으로 치닫기를 강요하는 억압으로 작용하며 비록 정의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끝내는 우리에게 닫혀진 이데올로기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때문에 김씨는 독자들이 풍요한 의식으로 대조하고 검색하며 선택할 수 있도록 지적 객관성과 화해의 정신으로 우리의 의식을 일궈 나갈 수 있는 작가의 진정한 지식인적 태도가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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