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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나들이] 맛있는 스토리, 장르소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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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익살스러운 '펭귄의 우울'(안드레이 쿠르코프 지음, 솔)은 먼 우크라이나에서 날아온 추리소설이다. 키예프에 사는 무명작가 빅토르는 죽지 않은 유명인사의 부고를 미리 쓰는 일을 맡게 된다. 그런데 부고를 쓴 사람들이 속속 죽어나가고, 빅토르 주변의 인물까지 죽거나 사라진다. 섬뜩하면서도 어딘가 우화적인 분위기처럼 제목의 '펭귄' 역시 은유가 아니다. 풍자정신이 탁월한 이 소설은 단지 수수께끼 풀이에만 주력하지 않고 시대의 우울까지 함께 담아낸 탁월성을 보여준다.

'어두워지면 일어나라'(샬레인 해리스 지음, 열린책들)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늑대인간.초능력자 등 초자연적인 존재들은 호러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공포의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다수의 인간에게 위협받는 일종의 소수자로 취급된다.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수키는 종업원으로 일하는 바에서 만난 멋진 뱀파이어 빌과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뱀파이어가 지목되면서 문제는 시작된다. 유머.호러.멜로.판타지가 혼합됐지만 기본적으로는 유쾌한 추리물인 코지 미스터리에 가깝다.

반면 '막다른 골목의 남자'(이토야마 아키코 지음, 작가정신)는 아주 현실적인 연애소설이다. 히나코는 12년간 오다기리를 짝사랑하고 있다. 애인은 아니지만 가족보다도 가까운 관계로 그들은 계속 만나고 있다. 소심한 무명작가와 건실한 직장인의 사랑은 아주 오랫동안 낮고 조용히 진행된다. 항상 옆자리에서, 그를 지켜보면서도 더 이상은 다가가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그런 은근한 친밀감이 아닐까? 불타는 열정보다도.

그러나 인간은, 종종 자기 자신을 속인다. 또는 유혹에 빠진다. 꾸준히 공포소설에 매진하고 있는 이종호의 신작 '이프'(이종호 지음, 황금가지)에서 수상한 e-메일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자살한다. 그들은 모두 고민이 있었다. 비만.스토킹.빚.가정폭력 등등. 그들은 그런 문제에서 벗어나 행복을 찾길 꿈꾼다. 누군가 그런 기회를 준다면 아무리 위험해도 뛰어들 준비가 돼 있다. 공포는 결국 그들의 허튼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런 욕망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불사(不死)일 것이다. '불사판매주식회사'(로버트 셰클리 지음, 행복한책읽기)는 영생을 얻기 위해 신체를 뒤바꾸는 일이 가능한 미래의 악몽을 보여준다. 1958년 뉴저지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즉사한 토마스는 22세기의 실험실에서 깨어난다.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의 신체에서. 돈으로 영생을 살 수 있고 퇴폐적인 자살게임이 횡행하는 22세기의 디스토피아는 결코 미래의 풍경으로 보이지 않는다. SF는 언제나 현세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고, 우리는 미래의 풍경에서 현실을 고뇌하는 것이다.

김봉석<대중문화평론가>

환야 '백야행'에 이어 다시 한 번 악녀의 지독한 행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범죄소설.(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랜덤하우스)

가라, 아이야, 가라 패륜이란 말이 낯설지 않은 요즘, 더 의미심장하게 읽을 수 있는 하드보일드 스릴러.(데니스 루헤인, 황금가지)

모방범 인간은 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일까. 범죄자와 피해자를 아우르며 현대사회의 모순을 관찰하는 범죄소설.(미야베 미유키, 문학동네)

남쪽으로 튀어 집단이 아니라 개인을 선택한, 이 세상을 바꾸려 했던 남자의 포복절도할 투쟁담.(오쿠다 히데오, 은행나무)

13번째 마을 완벽하게 잊혀진 중세의 한 마을에서 밝혀지는 교황청의 음모와 폭력.(로맹 사르두, 열린책들)

나는 전설이다 흡혈귀만 남은 미래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중산층 남성의 지독한 악몽.(리처드 매드슨, 황금가지)

와일드 소울 일본의 무책임한 아마존 이주계획에 분노한 한 남자의 처절한 복수극.(가키네 료스케, 영림카디널)

두개골의 서 영생을 찾아 사막으로 간 대학생들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뉴웨이브 SF의 걸작.(로버트 실버버그, 북스피어)

팔묘촌 소년 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가 활약하는 일본색 짙은 추리소설.(요코미조 세이시, 시공사)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이제는 세계를 우리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낸다. 일본 라이트 노블(만화.애니메이션.게임 등의 감수성을 지닌 소설)의 최신 걸작.(다니가와 나가루, 대원씨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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