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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서도 "해방"된 서울 해방촌|용산2가동 4년째 범죄 없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남산기슭을 타고 3호 터널 측으로 위치한 서울용산2가동 25, 26통 마을은 서울시내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의 하나다.
8· 15해방이후 월남한 실향민들이 모여 형성된 이 곳은 해방촌이란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곳.
4∼13평짜리 무허가 판찻집이 게딱지처럼 붙은 이곳 해방촌이 최근 몇 해 사이 「더블 해방촌」이란 애칭을 얻게됐다.
해방과 더불어 새 삶터를 얻은 실향민들이 범죄로부터 해방됐다는 의미. 『특별히 이렇다할 만한 활동은 없습니다. 이웃끼리 서로 관심을 갖고 인정있게 지내다보니 다행히 별탈이 없었을 뿐이지요.』
범죄 없는 마을 추진위원 대표 이재호씨(55·25통장)의 말.
25통은 올해로 4년 연속, 26통은 3년 연속으로 범죄 없는 마을로 기록돼 18일 명예의 현판식을 가졌다.
2백73가구 주민 1천1백여명이 사는 이곳은 10년전까지만 해도 「범죄있는 마을」이었다.
범죄 취약지인 남산이 바로 옆에 있는 데다 미군부대도 인접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것. 『잘 살지도 못하는데 마음이라도 편해보자는 말들이 주민들 사이에 나왔죠. 서투르나마 자율방범활동에 나서고 서로 관심도 갖다보니 예상 외로 한 해를 범죄 없이 보낼 수 있었어요. 물론 기대밖이었죠. 그 후로 주민들이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26통장 홍관복씨(51·상업)는 주민운동은 자신감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한다.
또, 26통 마을은 월남한 이북 실향민 중 평북 선천출신들이 많아 초기엔 90%이상을 차지했다.
현재도 주민의 절반정도가 선천 출신들이고 보면 이웃간에 허물이 없고 이웃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 정도여서 낯선 사람이 끼어들 틈이 없는 셈.
또 주민들 중 30%가 남대문시장·남산일대에서 노점상 등으로 생계를 꾸려나갈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하다보니 이웃사촌간에 서로 돕고 사는 사는 일이 스스럼 없는 생활양식인 것도 범죄를 막는데 한몫을 한다.
실제로 두 해 전에는 하루종일 골목길에 주차해있던 낮선 차를 주민들이 신고해 뒤트렁크에서 식칼·쇠파이프 등을 발견, 경찰수사를 통해 차를 버리고 간 조직폭력배들을 검거했다.
또 주민들은 중· 고생등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술에 취해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곧바로 파출소로 데려가기 때문에 다른 곳의 불량청소년들까지 이곳엔 얼씬거리지도 않는다는 것.
이곳 주민들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화재. 2년 연속 범죄 없는 마을로 선정됐을 때 설치된 소화전이 있기는 하지만 워낙 낡은 목조건물이 밀집해 있어 이들에게 불은 가장 큰 경계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 결과 대문연쇄방화사건 때는 서울시에서 가장 많은 50∼60명이나 되는 자체순찰반을 편성, 밤새도록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효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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