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산수 못하는 국회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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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7일 국회 기자실엔 눈에 확 띄는 보도자료 한 부가 뿌려졌다. 국회 건설교통위 소속 열린우리당 주승용 의원이 낸 '은평 뉴타운의 토지 원가 평당 183만원, 서울시가 3배 정도 부풀려'라는 제목의 국정감사 자료였다.

요지는 "서울시는 은평 뉴타운의 토지 원가를 평당 600만~800여만원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전체 토지보상비 6655억원을 사업부지 23만여 평에 용적률(155%)을 곱한 수치로 나누면 183만원"이라는 것이었다.

은평 뉴타운 고가 분양 논란이 초미의 관심사가 된 가운데 건교위 소속 여당 의원이 '서울시가 토지 원가를 뻥튀기했다'고 했으니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문제였다.

하지만 뻥튀기는 서울시가 아니라 주 의원이 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자는 서울시 외에 건교부.토지공사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했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토지 원가 계산 땐 총 사업부지 중 실제 사람이 사는 평수(은평 뉴타운의 경우 약 7만 평)로 나누는 것이 상식인데 전체 사업부지 23만 평으로 나눈 건 오류"라고 대답했다. 분모를 잘못 넣은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도 주 의원의 오류를 지적했다.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 본부장은 27일 오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판교 신도시의 경우 300만 평을 개발하면 그중 주택용지는 60만 평에 불과하다"며 "경실련도 은평 뉴타운 토지원가가 20~30% 부풀려졌다고 했지만 2~3배 뻥튀기됐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집없는 서민들은 주 의원의 주장이 사실인 줄 알고 분노했을 것이고, 사실이 아님이 드러나면서 더 깊이 허탈함을 느꼈을 것이다.

국정감사권은 입법권.예산심의권과 함께 국회의원의 3대 고유 권한에 속한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박탈됐다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국회 품으로 다시 돌아온 소중한 권리다.

그 권한은 국민이 자신들을 대신해 정부 부처의 잘못된 업무를 바로잡아 달라는 뜻으로 준 것이다. 그러나 어느 때부턴가 국감 자료를 이용해 튀어 보려는 의원들의 한건주의 때문에 국감의 취지가 위협받고 있다. 자료의 오류나 과장으로 인한 피해는 그 자료를 믿는 국민에게 두 배.세 배로 돌아간다. 주 의원의 주장은 고의인가, 실수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

이가영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