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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대 반대」로 되살아난 불 양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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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극우파 유대인 묘지훼손 온국민 크게 분노/국민전선측 기자회견은 언론기관도 외면
파리에서는 14일 미테랑대통령도 참여한 보기 드문 대규모 군중시위가 열렸다.
『반유대주의 반대,인종차별주의 반대』라는 구호아래 이날 오후 6시30분(현지시간)부터 2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시위에는 20만명이 넘는 파리시민이 참여,최근 급격히 고조되고 있는 프랑스내 인종 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에 대한 강력한 항의를 표시했다.
프랑스 유대인단체 대표자협의회(CRIF)주도로 열린 시위에는 극우파 정당인 국민전선을 제외한 좌ㆍ우파의 모든 정치단체와 종교인ㆍ지식인ㆍ청년ㆍ학생 및 프랑스 거주 외국인들이 몰려 최근 발생한 「카르팡트라사건」에 대한 일치된 분노와 우려를 나타냈다.
이날 시위의 직접적 동기가 된 「카르팡트라사건」은 지난 10일 프로방스 지방의 소도시 카르팡트라에서 발생한 유대인묘지 훼손사건.
석관 및 묘비석 32개가 심하게 훼손되고 최근에 안치된 일부 유해가 도굴돼 난자당하는 끔직한 만행이 비밀리에 자행됐다.
전에도 프랑스에서는 간간이 유대인묘지가 훼손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충격적이고도 엽기적인 경우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 사건은 즉시 프랑스 전체의 여론을 들끓게 했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70만 유대인이 즉각 반유대주의에 대한 격렬한 항의와 울분을 쏟아놓았다.
미테랑대통령의 철저한 수사지시에 따라 이번 사건의 혐의가 극우파 난동자들쪽으로 모아지면서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펭당수에게 자연히 여론의 따가운 눈총이 모아지고 있다. 르펭당수는 그동안 「프랑스인의 프랑스」를 외쳐오면서 인종차별과 반유대주의를 사실상 공공연히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프랑스 전체인구의 10%를 외국인이 차지할 정도로 이민문제가 프랑스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되고 있는 현실을 바탕으로 극우파인 국민전선은 최근 들어 급속히 지지기반을 확산해가고 있고,르펭당수는 이것을 다음 총선에서 표로 연결시키기 위해 최근 들어 더욱 소리높여 외국인 배척운동을 주동하고 있다.
그러나 르펭당수는 『이번 사건은 자신과 국민전선을 겨냥한 정치적 조작의 냄새가 짙다』면서 오히려 역공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르펭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프랑스언론과 식자층은 『파렴치한 적반하장격의 행위』라고 꼬집고 있다.
정당 가운데 시위에 유일하게 불참한 국민전선이 이날 저녁 갖기로 한 기자회견에 「렉스프레스」「누벨 옵세르 바퇴르」같은 일부 언론이 회견 자체를 선동행위로 간주,불참한 사실이 이번 사건과 관련,극우파를 보는 프랑스 양식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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