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이종각의 작품세계 호암갤러리에서 28일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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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조각전의 빈도가 현저해진 추세를 목격하는 이즈음이다. 조각인구의 급증이 현상적인 요인일테지만 조각자체가 지니는 현대적 조형의 문제가 그만큼 절실함에 그 내면적 요인이 있을 것이다. 70년대 이후부터 조각은 회화의 후속이란 불명예를 벗고 현대미술의 전반에 걸친 창조와 변혁의 문제에 있어 선도권을 획득하기에 이르렀으며 그러한 열기는 80년대 우리 미술에도 현저한 파급으로 나타난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창조와 변혁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양적인 증가가 질적 빈곤을 가져오게 하는 현실적 문제의 심각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조각이 공예화되어 가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는 조각이 지니는 본래적인 스케일과 방법을 벗어나 지나치게 다듬어진다든지 왜소해지는 경향을 지목한 것일 것이다.
재료의 남용에서 오는 빈곤한 형태의 거대화도 문제지만 장식화의 문제도 심각한 편이다.
이 같은 현실에서 보게되는 이종우의 작품은 우선 스케일·방법의 대담성에서 본격적인 것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상대적으로 조각현실의 답답함을 일시에 뚫어주는 것 같은 시원함을 안겨주고 있다.
우선 그의 방법은 조각의 기본적인 문제로서의 덩어리(양)에서 출발한다는데에서 접근을 용이하게 한다. 80년대 중반까지 이 양의 문제는 힘의 분출로서의 형태화라는 바로크적 성향을 띄었으나 작년과 올해에 걸친 근작에선 형태생성의 논리화와 공간적 인식에서 결정되는 독특한 구조화가 어우러지면서 선명한 독자의 조형언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분명한 윤곽의 사각형태와 파이프로 나타나는 선적인 결구는 기하학적이면서도 생명 형태적인 유연성을 결합해 보이고 있다.
조화와 긴장은 이 같은 형태에서 나타나는 그의 조형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오광수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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