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광·폭발 … 죽는 줄 알았죠" 한때 전기·물 끊긴 서울구치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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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소방대원들이 화재로 제한급수를 하고 있는 서울구치소 급수탱크에 물을 채우고 있다. 조용철 기자

"우와, 이제 밥이 나왔네."

작은 탄성 소리가 여기저기가 흘러나왔다. 27일 낮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방에서 점심식사를 기다리던 수용자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1식3찬의 식사를 무척 반겼다. 26일 인근에서 발생한 화재 여파로 구치소에 전기와 물.가스 공급이 모두 끊겨 저녁부터 이날 아침까지 두 끼 식사를 건빵과 빵.우유로 때운 탓이었다. 구치소 측의 밤샘 작업으로 이날 오전부터 취사시설이 정상 가동됐다.

그러나 화재 여파로 구치소 내부는 이틀째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30분씩 하루 여덟 차례 제한급수가 실시되면서 샤워는 불가능했고, 수용자들의 방에는 화장실의 용변 처리 등을 위해 물을 받아놓은 양동이가 한두 개씩 놓여 있었다. 구치소에는 10t짜리 대형 급수탱크를 단 소방차 10여 대가 수시로 들락거렸다. 인근 과천소방서를 비롯해 분당.안산 지역의 소방서에서 비상급수를 위해 출동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900여 명의 직원과 2700여 명의 수용자는 '요새'라고 생각됐던 구치소가 화재에 묻힐 뻔한 기억에 충격이 가시지 않는 듯했다.

"꽝 하는 소리에 뛰쳐나갔죠. 하늘에서 폭격을 한 듯 정문으로 섬광이 쏟아지면서 폭발하는 겁니다. 죽었구나 싶었어요."

서울구치소 최윤수 총무과장은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초소 바로 옆의 15만V짜리 송전탑의 전선이 불길에 끊기면서 초소를 덮쳤으나 다행히 인명피해가 없었다. 면회객 200여 명이 비명을 지르고 긴급 대피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초소 주변의 2㎞에 달하는 철제 펜스에 고압선이 닿아 녹아내리는 등 초소 주변이 가장 피해가 컸다.

문제는 구치소 전산시설이 과부하로 소실돼 통신망이 불통된 것. 인근 지역의 화재 여파로 휴대전화까지 불통돼 사고 발생 시각인 26일 오후 2시10분부터 10여 분간 서울구치소는 법무부 교정국이나 인근 소방서에 연락조차 할 수 없었다.

수용자 소란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구치소는 사고 발생 20분 뒤 수용자들이 있는 18개 건물에 기동대를 투입했다. 폭발음과 검은 연기로 인해 수용자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휴대용 마이크로 구치소 측은 "수용시설은 전혀 피해가 없으니 안심하라"며 긴급 방송을 실시했다.

저녁 무렵에는 인근 안양교도소 등에서 휴대용 서치라이트를 빌려와 정전에 대비했다. 그러나 오후 5시부터 비상발전기와 한전에서 지원받은 300㎾ 비상발전기를 돌려 TV 시청이 제한됐을 뿐 수용시설 내 전원 공급에는 문제가 없었다.

김종문 기자<jmoon@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 서울구치소=1987년 11월 청계산 자락의 13만여 평 부지에 18개 동의 수용자 시설이 만들어졌다. 현재 수용자는 2700여 명으로 미결수가 대부분이나 일부 사형수도 있다. 법조 브로커 김홍수씨와 사행성 오락게임 비리로 김민석 한국컴퓨터산업중앙회장 등이 수감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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