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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통인시장 나들이(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노대통령이 11일 서울 통인시장에 들러 장보러 나온 주부들과 대화를 나눈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대통령의 이날 시장나들이는,사전조정이 없었던 탓인지 평소 대통령행사에서 불만스레 느껴지던 딱딱한 규격성은 별로 느끼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대통령과 시민간에 오간 솔직한 대화가 좋았다.
『이젠 만원 가지고는 김치도 못담가요』라고 한 주부,전세보증금 3천만원을 대통령에게 빌려달라고 떼를 쓴 주부,전세값이 너무 올랐다고 항의한 주부의 발언들은 이 시절 이 나라의 모든 서민들이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런 꾸밈없는 주부들의 말을 듣고 노대통령도 장바구니 물가의 현실을 새삼 실감하고 민심동향의 일단을 느꼈을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물론 노대통령이 이날 시장에 가기 전에도 물가와 부동산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믿으며,그 대책을 위해 여러가지 고단위 처방을 쓰고 있음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날처럼 직접 문제를 몸으로 느끼고 민심을 파악하는 일은 매우 유익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쪼개 써도 모자랄 국정최고책임자가 매일처럼 현장을 나가볼 수는 없는 일이고 직접 가보지 않더라도 각종 보고나 신문·TV등을 통해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간접적인 파악만으로는 현장감을 갖기는 어렵고 보고와 현실간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간격도 확인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하는 까닭은 대통령과 정부가 민심을 좀더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올바른 정책은 올바른 현실파악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지금껏 6공정부는 이 점에서 다소 미흡감을 준게 사실이다. 6공 정부에 대한 비판에서 「실기」가 자주 지적되는 이유가 뭣이겠는가.
현실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대통령자신이 직접 민심을 살피고 현장을 확인하는 노력이 좀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시장 뿐 아니라 달동네나 산업현장도 가끔 가볼 필요가 있고 일선경찰의 실태도 더러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이런 노력은 대통령의 정확한 현실파악에 도움이 됨은 물론 대통령과 보통사람 사이에 일종의 채널을 형성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고 해당 기관장을 긴장시키고 보다 철저한 업무수행을 독려하는 의미도 있다.
통인시장에서 대통령이 만난 사람은 소수의 주부들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대통령에게 한 말로 대변되는 국민은 무척 많을 것이며 대통령은 이 한번의 나들이로 실은 많은 국민과 교감의 기회를 나눈 셈이 되는 것이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대통령의 통인시장 나들이에 우리가 이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대통령과 주부들간에 있었던 몇토막 대화가 꾸밈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꾸밈없는 있는 그대로의 전달이 대통령의 현실 인식을 도왔을 것이고 이 장면의 설득력을 있게 해준 것이다.
과거 이승만대통령이 시찰에 나섰을때 상인을 사전에 교육시켜 물건값을 터무니없이 싸게 말하도록 했다는 얘기는 두고 두고 이박사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요즘 세상에 그런 일은 상상도 할수 없겠지만 노대통령과 6공정부는 민심과 시정여론의 파악에 더욱 힘을 쏟고 보통사람의 어려움에 귀기울이는 대통령,정부라는 모습을 실감있게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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