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경찰관(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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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스웨덴의 경제학자 G 뮈르달은 아시아의 후진성을 분석하는 저서에서 교통경찰관의 비위를 가장 흔한 부조리의 모델로 소개한 일이 있었다. 특히 인도의 경우 교통경찰관이 길거리에서 뇌물받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사회의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했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니고,바로 우리나라의 교통경찰관은 일찍이 그점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다. 자동차 깨나 몰고 다니는 사람들의 사례집을 엮는다면 모르긴 해도 세계의 베스트 셀러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어느 운전자는 지갑속에 만원짜리 한장밖에 없는데 신호위반으로 붙잡혔다. 마침 파란 신호가 황색 신호로 바뀌는 순간에 진행한 것이다.
천리안을 가진 교통경찰관이 그것을 놓칠 리 없다. 불문곡직하고 운전자는 경찰관에게 1만원을 내밀며,5천원을 거슬러 달라고 했다. 세상엔 때때로 마음씨 착한 사람도 있어서 그대로 되었다.
이 경우는 애교(?)라도 있어서 웃음이 나오지만,서울 서초동 어느 네거리엔 오후 서너시만 되면 가로수 뒤에 교통경찰관이 어김없이 서 있다. 저쪽에서 네거리를 건너오는 차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쪽 네거리는 차선이 미묘하게 그려져 있어 자칫하면 좌회전선을 진행선으로 착각하기 쉽다. 바로 그런 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물 속의 고기잡기다.
러시 아워 무렵이면 그런 차들이 줄을 잇는다. 미리 경험이 없으면 백발백중 걸려 들게 되어있다. 몇날 며칠도 아니고 직무에 충실한 교통경찰관은 벌써 몇달 몇해를 두고 그 「황금어장」을 지키고 있다.
직무충실도 좋지만 좀더 사려깊은 교통경찰관이라면 당장 차선을 고쳐 그릴 만도 한데 그런 궁리를 내는 경찰관은 아직 없다.
요즘 치안본부는 교통경찰관 4명을 파면했다. 길거리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다. 앞으로는 과잉단속,함정단속을 엄금하고,돈 받기 좋은 자리엔 아예 경찰관을 세우지 않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며칠이나 가는지 어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교통경찰관의 비리는 한 개인의 품성이나 자질만을 따져 없어질 일은 아니다. 이 기회에 구조적인 문제도 파보아야 한다. 그런 노력도 없이 교통경찰관의 뇌물이 사라지리라고 믿는다면 괜히 뇌물의 단가만 높이는 결과가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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