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런 인권위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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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의 돌연한 사퇴는 인권위의 난맥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북한 인권에는 눈을 감고 이라크 파병 등에 월권을 일삼으며 혼란을 야기하더니 결국 위원장 사퇴로 나타난 것이다.

조 위원장은 건강 문제를 사퇴 이유로 내세웠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내분 쪽에 무게가 더 실린다. 조 위원장과 인권위원 간에 갈등이 누적돼 왔고, 거기에는 인권위의 이념 편향이 발단이 됐다는 분석이다.

인권위는 2001년 출범 후 국가보안법 폐지 등 상관없는 분야에 나섰다. 지난해 4월 조 위원장이 취임한 뒤에도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등을 권고하며 혼란을 야기했다. 올해는 동일 노동 동일 처우 등을 담은 국가인권기본계획(NAP), 급진적인 차별금지법 등을 발표해 경제계의 반발을 샀고, 성전환 수술 건강보험 적용과 같은 엉뚱한 권고안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에 주파수를 맞추느라 출범 4년 만인 지난해 9월에야 북한 인권 문제를 안건으로 상정했고, 그나마 1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또 최근에는 공개 총살 위기에 처한 북한 주민을 구해달라는 진정을 각하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조 위원장은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다 이번에 한계에 부닥친 것이다.

인권위를 아는 사람들은 의사 결정의 비합리성을 지적한다. 이는 11명의 인권위원 중 시민단체나 재야단체 출신이 많고 변호사, 법대 교수는 3명에 불과한 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인권위원들과 사무처의 갈등도 심각한 수준이다.

인권위 업무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나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와 상당 부분 겹친다. 최근에 법무부에 인권국이 생기고 군.경찰에 옴부즈맨 제도가 도입돼 인권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됐다.

인권위가 그동안 비정규직, 여성 재소자 등 소수자 인권 개선에 기여해온 부분도 분명히 있다. 따라서 인권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인권침해 조사.구제, 평등권 침해와 차별 구제 등의 고유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간 200억원 이상의 세금을 들일 필요가 있는지, 근본적인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