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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장하성 펀드, 태광측 열람 거부에 법적 대응 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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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펀드 운용을 맡은 존 리가 대표 권한이 있는지 확인되기 전까지는 주주명부를 공개할 수 없다."(대한화섬 관계자)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일명 장하성 펀드)와 대한화섬의 모회사인 태광그룹이 치열한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는 주주명부. 주주명부가 도대체 뭐기에 이렇게 치열한 다툼이 벌어질까.

◆주주명부가 뭐기에=주주명부를 둘러싼 법적 공방은 드문 일이 아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상장 기업에 대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시도되거나, 경영권 분쟁이 생기면 주주명부의 공개 여부를 둘러싸고 주주와 해당 기업 간에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지기 일쑤다. 올 3월에는 벽산이 투자자인 아이베스트투자의 주주명부 등사 요구를 거부해 갈등이 있었고, 2004년에는 현대상선이 KCC의 공개 요구를 거부해 '제2 왕자의 난'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이처럼 치열한 분쟁이 생기는 이유는 주주명부에 주주의 이름과 주식 수뿐만 아니라 주소 등 개인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경영권 등을 놓고 분쟁 당사자 간에 주주총회 표 대결이 벌어질 경우 주주의 개인정보 입수는 필수다. 주총에서 승리하려면 더 많은 주주의 위임장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주주들의 주소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일단 주주와 접촉해야 위임장을 확보하거나, 우호지분으로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하성 펀드의 주주명부 공개 요구 목적이 경영권을 노린 주총 표 대결은 아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한화섬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70%를 넘기 때문에 장하성 펀드 측이 경영권을 장악하기는 불가능하다"며 "다만 주주명부 열람 등을 요구하면서 존재감을 알리고, 향후 주주명부를 통해 소액주주들을 우호지분으로 끌어들이면서 경영진을 간접적으로 압박하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공개 안 해도 제재 방법 없어=상법 제396조에 따르면 한 기업의 주주와 채권자는 언제든지 주주명부에 대한 열람 및 등사를 청구할 수 있다. 장하성 펀드가 수차례에 걸쳐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 청구'를 요청하고 결국 법적 대응에 나선 것도 이 조항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법률에 명시됐음에도 불구하고 적대적 M&A 등 분쟁 과정에서 회사 측은 주주명부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공개 청구 목적이 정당하지 않다면 주주명부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판례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선 주주명부 공개를 계속 거부해도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무는 게 전부다.

지킴 법률사무소 이상복 대표는 "처벌 강도가 약한 탓에 일부 기업들은 법원의 주주명부 공개 가처분 신청이 내려져도 계속 열람 신청을 거부하기도 한다"며 "이 경우에는 본안 소송을 통해 강제집행에 나서야 하지만 형사 사항이 아니어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천경득 변호사는 "과거 SK가 경영권을 위협하던 소버린의 주주명부 공개 요구를 수용한 것처럼 정당한 주주의 권리 요구는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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