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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ㆍ중국인/박병석 전홍콩특파원의 「대륙기행」:1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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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홍콩 부는 자랑거리 가난은 수치/정치부재… 축재만이 생의 목표/“돈이 있으면 할아버지요 없으면 손자”/중국 귀속되면 뺏길까 가진자들 탈출
같은 중국인들이지만 홍콩인들은 본토나 대만의 중국인들에 비해 여러가지 면에서 독특한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홍콩의 TVㆍ신문들은 사회 각계 저명인사들의 집을 탐방,그들이 사는 모습을 정기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 편집방향이 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한국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고개를 갸우뚱 할 때가 많다.
지난해 홍콩의 A­TV가 방영한 마카오 최대 도박장 리사보아의 주인이자 국제카지노계의 거물인 스탠리 호씨집을 탐방했던 프로는 홍콩인들의 가치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호화 대저택인 그의 집 뜰 야외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모습에서 시작된 이 프로는 대리석은 내부에 세계 각국으로부터 수입한 초호화가구와 샹들리에,카핏 및 호사스런 장식품들을 스탠리 호씨가 자랑스럽게 설명하고 있는 장면으로 채워져있다.
또 홍콩의 한 잡지는 황일화는 배우겸 TV탤런트가 자기집 욕조 등 목욕탕에만 30만 홍콩달러(약3천만원)의 거금을 들여 꾸민 모습을 컬러 화보로 소개했다.
이밖에도 홍콩의 중진 부부변호사인 주계방씨 부부는 세면장의 변기를 금으로 특별 제작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부를 죄악시하는 사회주의 중국과 본토의 관문인 홍콩은 이처럼 체제이상의 엄청난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괴리 가 있다.
홍콩인들은 부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를 숨기지 않으며 못가진 계층은 가진층을 적대시하거나 질투하기는 커녕 오히려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의 두배인 1만달러인 그들이지만 주택난과 빈부의 차가 간단치 않아 10평도 안되는 낡은 아파트에 2∼3세대가 몰려 사는 계층도 적지않고 구걸과 노숙으로 지내는 부랑자들도 수천명에 이른다.
「동ㆍ서」와 「신ㆍ구」ㆍ「빈ㆍ부」가 공존하는 곳이 홍콩이라고 들 한다.
특히 빈과 부가 거부감없이 자리를 함께 하는 홍콩의 풍조는 금전에 대한 중국인 특유의 강한 집착에다 식민지 지배자로서 영국당국이 홍콩인들의 정치감각을 거세시키고 돈만을 유일한 목표로 삼도록 유도한 식민지 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돈이 있으면 할아버지요,돈 없으면 손자」라는 말이나 「가난은 비웃어도 몸파는 것은 비난할 수 없다」 (소빈불소창)는 말들은 이들이 갖고 있느 금전에 대한 관념을 상징적으로 얘기해 주고 있다.
월급 1만∼2만원에 옛 직장을 헌신짝 버리듯 바꾸는 자연스런 풍조를 낳고 있다.
미인대회에 당선된 여인이 『이제 돈을 벌 수 있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것은 명이 있으면 이가 따른다는 사고방식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같은 황금만능의 풍조때문에 1인당 GNP 1만달러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변변한 자기 문화 하나 없는 「문화의 사막」 지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심지어 부부가 아침에 책가방을 멘 자녀들을 데리고 식당에서 밥을 사먹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삭막한 도시다.
돈이외에는 애착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돈의 향방만 좇는다.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귀속되는 97년을 앞두고 미국ㆍ캐나다ㆍ호주 등지로 속속 이민을 떠나는 「홍콩탈출」,홍콩판 엑서더스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87년 3만명,88년 4만5천명,지난해에는 5만5천명으로 매년 늘어나는 홍콩인의 탈출은 가진 것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때문이다.PN JAD
PD 19900508
PG 05
PQ 02
CP HS
SA P
CK 04
CS A01
BL 2913
GO 중앙칼럼
GI 김영희
TI 내정이 더 급하지 않은가/김영희(중앙칼럼)
TX 「총체적인 난국」. 정부는 우리 사회가 지금 앓고 있는 중병을 이렇게 부르고 있다. 가급적 추상적이고 어렵고 일반적인 관제용어를 써서 정부ㆍ여당의 실정에 대한 비판을 줄이고 정확하지만 살벌한 용어가 사회에 미칠 충격을 완화하자는 의도가 역연하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맞고 있는 위기의 실상은 평민당의 표현대로 「민주주의 전반의 비상한 국가위기」임에 틀림없다. 사회분위기는 모든 기존의 권위에 대한 불신과 냉소로 가득 찼다. 88올림픽때 넘치는 활기로 세상의 찬사를 받던 사회가 어느새 도덕적 허무주의에 빠져 방향감각을 잃고 표류하는 것 같기만 하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의 위기 정도가 아니라 정신적인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민자당의 집안사정 하나를 놓고 보아도 위는 위대로,중간은 중간대로,아래는 아래대로 공동체 의식은 퇴색하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대권다툼,자리다툼,내몫챙기기로 공익은 뒷전이다. 이것이 경제위기의 중요한 정치적 원인이다.
이런 형편에 어느 누가 국민들에게만 제자리를 지키라,분수껏 살라,타협하고 양보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서슬퍼런 5공의 독재를 무너뜨리고 6ㆍ29를 쟁취한 국민들이 6공에 거는 기대와 요구는 처음부터 높고 강할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종래의 사회적 통제 수단은 무력해지고,모든 형태의 권위는 일단 그 정당성을 의심받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노태우정부가 극복할 역사적인 도전이요,서둘러 해결할 과제였다.
그러나 결과를 가지고 판단하자면 노태우정부는 우리 사회의 위기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정확히 꿰뚫어 보는 사안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정부는 여소야대라는 고맙고도 편리한 구실뒤에서 무책으로 모든 선거공약을 「공약」으로 흘려보내면서 허송세월했다. 노대통령은 오늘의 위기가 경륜과 겸허함의 뒷받침이 없는 젊은 측근 몇사람의 반짝거리는 머리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요즘에 와서야 알아차린것 같다.
그는 7일의 시국담화에서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에 대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정부의 안정의지까지 의심받는다고 한탄했다. 문제의 핵심은 제대로 짚었다. 대통령과 여당과,그리고 정치일반에 대한 깊은 불신은 국민들간에 심리적인 불안을 낳고,미래를 설계하기보다는 오늘 즐기고 보자는 과소비와 퇴폐풍조를 낳을 수 밖에 없다.
대통령과 정부와 정치권이 하는일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너무 깊다. 그래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지금까지 잘못된 것은 나의 책임이다,금년말까지는 정치ㆍ경제ㆍ사회의 위기들을 해결하겠으니 국민들도 협조해 달라고 호소한데 대해서도 그 결단에 기대를 하면서도 결과는 두고보자는 것이 전반적인 반응인것 같다.
나라의 위기를 해결하는데 너무 늦은 법은 없다. 국민들이 답답해 할 정도로 대통령과 그 주위의 높은 사람들이 위기에 둔감한 것 같이 보였는데 알고보니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중요한 국제회의에 참석한 재무장관을 부랴부랴 불러오고 오밤중에 경제장관회의를 소집하고 총리더러 읽으라고 했던 시국담화문을 대통령이 직접 읽은것만 보아도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마음을 다져먹은것 같다. 난국해결의 시한까지 연말로 공약했다.
그런데 자꾸 마음에 걸리는게 있다. 대통령이 이달말에 일본에 간다는 계획이다. 국민들도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대통령도 일부러 힘주어 강조한 오늘의 위기­정부가 유식하게 표현한 총체적인 난국­가 대통령의 담화와 오늘 나온 경제대책으로 월말까지는 언제 있었더냐 싶게 말끔히 해결된다고 믿는 것 일까.
한일 정상회담에서 다룬다는 현안문제의 어느 하나를 들여다보아도 「총체적 난국」의 해결보다 급한 것이 없다. 급하다고 한들 대통령이 이 시기에 직접 나서야 할 정도일까.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타결을 보았다는 재일교포 3세와 그 후손들의 지위문제라는 것도 대통령의 방일을 정당화시켜주기에는 어림없이 미흡하게 보인다. 이번 두 나라간의 합의의 결과로 지문을 찍지않아도 되고 번거로운 외국인등록증을 노상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혜택을 볼 교포 3세는 아직은 딱 네사람이다.
그들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사람이 지문찍을 나이인 16세가 되는 것은 2005년이다. 그러니 대통령 방일의 대가로 우리가 일본에서 받은 것은 지금부터 15년 후에나 지불기일이 도래하는 어음한장이 아닌가 싶다.
21세기의 태평양시대 협력이니,기술도입이니,무역적자해소니 하는 한가한 낙관론은 일본을 조금이라도 안다는 사람들의 귀에는 수상쩍게만 들린다.
일본이 꿈꾸는 태평양경제 블록에서 들러리를 설수는 없다. 과거에 매달리는 것도 문제지만 한국과 일본사이 같은 특수한 관계의 두나라가 진정한 이웃이 되려면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른 역사적인 잘못에 대해서는 깨끗이 사과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
84년 전두환대통령의 방일때 그런 기회가 있었는데 히로히토국왕은 어물쩡 모호한 유감표시로 순간을 넘겼다. 그때는 국민과 언론의 입에 재갈이 물려 있어 우리측의 대단한 외교적 성과로 선전되었다. 이제는 국민들도 할 말하고 들을 말 듣고 사는 세상임을 청와대와 외무부는 잊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노대통령이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일본방문을 강행하면 바람직하지 않은 오해를 받을 소지도 있다. 내정에서 업적을 올리지 못해서 초조한 지도자는 외교로 눈을 돌리기 일쑤다. 미국의 닉슨대통령이 72년에 중국,74년에 소련을 방문한 것이 좋은 예다.
정통성의 위기에 시달리던 전두환대통령도 동남아와 아프리카를 드나들면서 남남협력이니 뭐니 하고 요란을 떨었다. 남은게 뭔가. 긴 눈으로 보면 국력의 낭비일 뿐이다.
노대통령의 일본방문도 꼭 그렇다는게 아니다. 그런 오해를 받을 소지가 충분히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을 일본사람들이 얼마나 정중하게 모실지 국민의 한사람으로 걱정이 되어 하는 소리다. 어떤 지도자라도 국내의 입지가 강해야 밖에서 말발이 서는법 아닌가.
신문에 이런글 한줄 나간다고 대통령의 방일이 취소될리 없다. 다만 대통령 스스로 국민앞에서 인정한 위기상황과 이 시기의 일본방문은 앞뒤가 안맞는다는 점은 짚어 놓고 싶다.<본사상무>PN JAD
PD 19900508
PG 05
PQ 03
CP HS
SA P
BC F
CK 04
CS H02
BL 1508
GI 파프
TI “통독군사지위 「쿡안」이 현실적”/나토가입하되 동독영토엔 배치안해
TX ◎월리엄 파프 미 칼럼니스트 특별 기고
독일통일의 최대 장애물은 바로 안보문제다.
콜 서독총리와 서구동맹국들은 통일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대안은 통일독일이 나토나 바르샤바조약기구 어느 곳에도 가입하지 않거나,아니면 모두 가입하는 것이다.
이중 양기구에 모두 가입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으로 동ㆍ서독 유럽통합기구가 생긴뒤에야 가능할 것이다.
통일독일이 양쪽 어느기구에도 가입하지 않는 것은 다른 국가들이 조약의무에 묶여 행동에 제한을 받는데 반해 통일독일은 독자적인 군 행사행동을 보장받는 점에서 많은 우려를 낳는다.
이 시점에서 서구 방위기구의 창립기원과 독일의 안보역할을 돌이켜 보는 것은 문제해결에 큰 도움이 된다.
제2차 대전후 47년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재침략에 대비,50년 기간의 상호방위조약인 덩케르크조약을 체결했다.
1년뒤인 1948년 벨기에ㆍ네덜란드ㆍ룩셈부르크도 이 조약에 가입했다. 이것이 브뤼셀조약으로 여기서 서유럽동맹(WEU)이란 공동방위기구가 탄생했다.
서유럽동맹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나 49년 미국ㆍ캐나다가 서구국가들과 함께 나토를 창설한 뒤 실제업무는 나토로 이양됐다.
당시 독일은 어느 기구에서도 배제됐으며 무장해제된 피점령국 상태였다.
그러나 소련의 위협이 심각히 대두되면서 독일재무장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덜레스 당시 미국무장관은 『미국의 유럽방위 부담이 너무 크다』며 이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나 서유럽국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특히 유럽방위공동체 설립안을 처음 제안했던 프랑스는 독일을 포함시키는데 끝까지 반대,결국 54년 프랑스의회는 이안 자체를 폐기해 버렸다.
이때 영국외무장관 이든경은 브뤼셀조약을 확대,서독ㆍ이탈리아 등 패전국을 포함하는 나토설립안을 제안,물꼬를 텄다.
만약 동독이 서독에 편입되는 형태로 통일이 이뤄진다면 통일독일은 특별한 거부의사가 없는 한 나토와 서유럽 동맹의 일원이 되는 것을 뜻한다.
소련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나토군사력이 폴란드국경까지 접근하고 동독주둔 소련군이 나토관할 영토안에 있다는 우스꽝스런 가설이 가능해지는 것으로 소련이 이안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시점에서 오랫동안 유럽공동체를 연구해온 역사학자 돈 쿡의 새로운 제안은 매우 현실적이다.
이 안의 골자는 「통일독일은 자동적으로 나토에 가입되지만 현동독 영토내에는 나토군을 배치하지 않는다. 통일독일정부는 동독군을 해체하고 새로운 국경수비대를 창설,현동독국경을 수비한다」는 것이다.
쿡안은 나토와 소련사이의 견해차를 좁히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소련과 폴란드는 나토군과의 사이에 비무장 지대가 생김으로써 어느정도 안심하게 될 것이다.
통일독일은 서구정치제도에 자연스럽게 흡수되고 통독후 가장 근심거리인 독일군의 향배도 나토에 잔류함으로써 「공동방위에 기초한 유럽안보」가 더욱 공고히 될 수 있다.
현재로선 어느 누구도 이보다 나은 대안을 생각할 수 없으며 쿡안은 결국 자연스럽게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유럽문제를 이끌어 나갈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다면 부시 행정부는 즉시 쿡안을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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