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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과 첨단과학의 만남 "레이더로 유적발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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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캄보디아의 세계 문화유산인 앙코르와트 사원은 밀림 속에서도 웅장한 자태를 자랑한다. 그러나 지금 드러난 것보다 훨씬 오래된 유적이 밀림 속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특수 레이더장비를 장착한 항공기가 알아냈다. 촬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역사에 알려진 앙코르왕국(657~1432)보다 훨씬 이전인 선사시대의 앙코르 문명 흔적들이 드러났다.

축구장 크기 만한 선사시대 문명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지역은 앙코르와트 사원 북쪽 25km 지점. 항공기에 실린 장비는 '공중촬영 정보종합 레이더(AIRSAR)'다.

◆'마이크로파를 이용한 경주 유물 항공 탐사' 이미지 크게 보기

국내에서도 이 AIRSAR를 이용한 유적 관측이 처음으로 시도됐다. 2000년 NASA와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문우일 교수가 공동으로 항공촬영을 통해 경주시와 공주시.제주도 일대를 촬영한 것이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임효재 교수는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기존의 유물 훼손 정도와 아직 발굴하지 못한 지역 어느 곳에 추가 유물이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교수는 "아차산 고구려 유적도 AIRSAR로 관측하려 했으나 2백km 이내에 접근할 수 없다는 북한의 완강한 반대로 실패했다"며 아쉬워했다.

수년 동안 땅을 파서 유적을 발굴하는 전통적인 고고학 발굴방식에 일대 변화가 오고 있다. 땅밑 데이터를 발굴하지 않고도 손바닥처럼 들여다 볼 수 있는 첨단 기술 덕분이다.

이스라엘 연구팀도 마이크로파를 땅에 쏴 반사되는 정도에 따라 사막에 유적이 묻혀있는 위치와 모양 등을 정확히 파악해냈다.'P-밴드' 영역의 마이크로파는 파장이 상대적으로 길어 더 깊은 땅 속까지 침투한다.

이스라엘 벤구리온 대학의 댄 블룸버그 박사는 "모래에 묻혀 있는 유물 탐사에 더욱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네게브 사막 위로 P-밴드 파 레이더를 부착한 비행기를 날린 결과 사막에 묻혀있는 철조각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열린 세계 고고학 학술대회에서도 첨단 기술과 고고학의 결합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자력계측기'를 이용하는 방법, 적외선을 이용한 '열(熱) 이미지 센싱' 등 다양한 방법들이 소개됐다.

자력계측기는 미국에서 개발돼 일본 야오이 시대의 야기(八木) 유적에 적용됐다. 그 결과 고고학자들이 수십년간 매달려야 했던 작업을 불과 일주일도 안돼 끝냈다. 임교수는 "자력계측기가 점점 정교해져 땅 속의 선사시대 집터 크기는 물론 화덕이 있던 자리까지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 아칸소대 연구팀은 캔자스주 '아미 시티' 유적을 이 방법을 동원해 관측했다. 땅에 전기를 흘려보내 감지되는 전기 저항력을 이용해 땅 밑 보도블록과 길의 위치를 파악한다. 보도블록 등이 주변 흙보다 전기에 대한 저항력이 더 강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열이미지 센서는 땅 밑에 돌무덤이 묻혀있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0.1도 정도의 온도 차이가 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아칸소대 연구팀은 이를 이용, 미주리강 주변의 선사시대 집터가 예상보다 두배나 크다는 점을 알아내기도 했다.

지구관측 위성도 유물탐사에 이용된다. 땅속 0.5m 길이의 물체까지 관측할 수 있다. 미 콜로라도대 연구팀은 상업위성인 '이크노스'를 이용해 남미 코스타리카의 아레날 지역의 유적을 탐사하고 있다. 임교수는 "첨단 기술을 이용해 일부 지역만 발굴해 훼손을 줄이는 것이 고고학 선진국의 요즘 추세"라고 말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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