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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 법원 '공판중심주의' 본격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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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용훈 대법원장의 '검찰·변호사 비하성 발언'으로 촉발된 법조 갈등이 봉합되지 않고 있다. 25일 정상명 검찰총장(中)이 임승관 대검차장(左), 차동민 기획조정부장과 함께 대검청사 별관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이용훈(64) 대법원장의 '검찰.변호사에 대한 비하성 발언'으로 촉발된 검찰과 법원의 갈등이 공판중심주의를 둘러싼 공방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검찰청은 25일 '증거분리제출제도'를 10월부터 전국 55개 검찰청에서 전면 실시한다고 밝혔다. 증거분리제출제도는 형사사건 피고인을 기소할 때 공소장만 내고 그 외의 수사기록을 법정에서 필요한 경우에만 제출하는 것이다.

이는 판사가 법정에서 검찰과 피고인 측의 진술을 직접 들으며 유.무죄를 판단하는 재판방식이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등 18개 지검에서만 부분적으로 시범 실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은 첫 재판이 열릴 때 피의자 신문조서.참고인 조서 등 모든 수사기록을 한꺼번에 제출해왔다. 조근호 대검 공판송무부장은 "공소 사실과 무관하거나 불필요한 증거는 법정에 일절 제출하지 않을 것이며 증거도 법정에서 증거능력이 부여된 이후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공판중심주의 대결'=검찰은 이 대법원장의 비하성 발언에 반발했지만 이에 정면으로 반발하기는 어렵다는 수세적 입장이었다. 이 대법원장의 발언이 표현상 거칠기는 했지만 시대적 추세인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검사들이 밀실에서 비공개로 진술을 받아놓은 조서가 어떻게 공개된 법정에서 나온 진술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느냐"(9월 18일 대구 고.지법 순시), "재판 모습을 갖추려면 검사의 수사기록을 던져버려야 한다"(9월 19일 대전 고.지법 순시)는 말은 공판중심주의 강화를 주문한 말이었다.

정상명 검찰총장도 이날 오전 확대 간부회의에서 "검찰 내부 자성이 필요하다"며 파문 수습에 나서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선 "검찰이 반개혁적 집단으로 몰리고 있다""공판중심주의를 제대로 하자"는 반발이 나왔다. 결국 대검은 공판중심주의 취지를 살린다는 명분을 앞세워 법원과 '공판중심주의 대결'에 나선 셈이다.

조 공판송무부장은 "그동안 검찰은 공판중심주의에 적극적으로 대비해 왔는데 마치 검찰이 이를 반대하는 조직처럼 비춰졌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 재판 지연 등 부작용 우려=대법원 관계자는 "26일 이 대법원장이 서울 고.지법 초도순시 때 자신의 발언에 대한 해명과 유감을 표명할 계획인데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다"고 털어놨다. 증거분리제출제도가 제대로 시행되려면 현재보다 4배 정도의 판사가 늘어나야 한다는 게 법원의 분석이다.

현재 상황에서 재판의 장기화 등 부작용도 예상되고 있다. 재경지법의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완전한 공판중심 재판을 할 여건도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이 일방적으로 원칙론을 들고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문병주 기자

◆공판중심주의=법정에서 증인들의 진술과 피고인 심문을 통해 유·무죄를 판단하자는 ‘듣는 재판’형태의 재판진행이다. 형사소송법에는 공소장일본주의(公訴狀一本主義:법관이 재판에 선입관 없이 임하도록 하기 위해 검사는 기소할 때 공소장 하나만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는 취지)가 규정돼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 원칙이 확립돼 있지만 실제 이행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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