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공권력… 「파행」의 연속/끝내 파국맞은 KBS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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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MBC등 동조… 파장 증폭 우려/대화 안통해 해결 오래 걸릴 듯 KBS에 또다시 공권력이 투입돼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됐다.
사원들의 제작거부와 정부의 강경대응으로 20일간 파행방송을 겪은 KBS는 공권력투입으로 더욱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되어 방송정상화의 가닥을 잡기도 어렵게 됐다.
정부의 이번 공권력 재투입은 지난달 12일 첫 경찰투입때의 사장취임반대 사원들의 진압차원을 넘어서 공권력이 언론기관인 방송사를 물리력에 의해 통제하게되는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게 했다.
이같은 KBS사태의 심각성은 KBS내에서 뿐만 아니라 언론계와 산업계로 확산,사회전체의 위기상황마저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크다.
국가 기간방송 KBS가 정상을 되찾게 되는 것은 지금으로선 전혀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 공권력투입은 농성해산과 비대위간부 연행만으로 그치지 않고 경찰이 당분간 KBS내에 상주하며 시설보호와 집회저지에 나설 것이 확실하다.
정부의 방송국 봉쇄조치는 없더라도 이같은 물리력의 동원은 당분간 더욱 철저한 제작거부를 낳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사원들이 제작에 참여하게 되더라도 KBS의 파행방송은 부분적으로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또한 사원들의 서사장 퇴진요구가 계속되고 장기화될수록 사원들간,간부­사원간의 깊어지는 골을 치유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파행방송 20일간 광고료및 시청료 손실이 50억원에 달한다는 KBS자체 집계를 감안하면 KBS가 재정적으로도 보게 될 타격도 엄청날 것이다. 특히 방송의 최후 보루인 송출 기술직 사원들이 동조 파업을 벌일 경우 적어도 지역적으로 방송이 끊기는 우려마저 대두되고 있다.
MBC와 CBS등 다른 방송사에서 이미 동맹파업을 결의하고 있고 이같은 파장이 다른 언론사로 번져가면 정부와 언론과의 싸움으로 비화될 조짐마저 일고 있다.
이번 사태는 ▲방송과 정부와의 관계 ▲언론사의 노조운동 ▲방송의 공공성 등을 전면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될 중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이번 KBS사태를 살펴보면 정부의 강경 대응 방침은 사태가 시작되면서부터 조금도 변동없이 지켜져왔다.
발생초기부터 노사분규와는 질적으로 다르게 KBS사원과 정부와의 대결양상을 보인 이번 사태가 이같이 위기로까지 확산된 것은 양측이 양보할 수 없는 선에서 극한대결을 벌여온 데 직접적 원인이 있다.
결국 서기원사장의 진퇴문제는 방송계 전체와 정부와의 대립으로 증폭되고 있고 사회불안의 가장 큰 불씨로 번졌다.
정부가 일관되게 타협안이나 중재노력을 펴지않고 강경대응을 한 이유는 ▲사장선임은 법과 국권수호 차원에서 철회할 수 없고 ▲방송제작거부는 용납할 수 없는 불법행위이며 ▲공공시설인 방송국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또 최근 사회분위기와 관련,정부의 판단은 ▲KBS사태가 장기간 방치될 경우 노동절인 1일이후 5월중 큰 사회불안 야기요인이 되고 ▲현대중공업 사태와 마찬가지로 강경의지를 보여야 하며 ▲장기화될 수록 국민 여론이 정부쪽으로 기운다는 배경을 깔고 있다.
더구나 정부가 추진중인 방송구조개편 시기가 맞물려 공영방송 KBS의 새로운 위상정립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의 이번 사태에 대한 구도인 것으로도 분석되고 있다.
이와 대립되는 KBS사원들의 인식은 정부가 미리 준비된 계획하에 KBS를 재편하려는 것이 PD구속ㆍ법정수당 변태지급 특별감사 등 일련의 사건과 함께 서기원사장 선임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잠재적 인식을 배경으로 언론인들의 자존심을 손상시킬 정도의 공권력행사가 제작거부라는 예기치 못한 사태를 촉발시킨 것이다.
더구나 파행방송이 계속됨에도 불구,정부측은 「서사장 퇴진불가」 방침을 고수하며 사원들의 분위기를 가라앉히기보다는 더욱 자극시켜왔다.
28일부터 방송정상화의 목소리가 대두되는 상황에서 중재에 나선 김용갑 전총무처장관은 타결가능성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KBS사원들에게 기만당했다는 인식을 주어 파국으로 몰고간 직접적 원인이 됐다.
이와함께 방송통폐합이래 KBS자체가 안고있는 난맥상이 간부­사원들과의 대립,사원들의 계파간 대립으로 나타나 파행방송 20일간 자체내수습은 모색단계에서 모두 좌절되기 일쑤였다.
세계 방송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KBS의 시련은 정부와 KBS사원간에 상황인식에 대한 극적인 합일점이 찾아지지 않는 한 해결의 전망은 어둡다고 할 수밖에 없다.<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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