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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종주국에 「본산」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심산유곡에 자리잡은 고요한 연무장.
마치 중국무술의 본산인 소림사(소림사)의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위엄과 적막이 주변에 들어찬 노송(노송)을 압도하고 있다.
본당(본당)에 이르기까지 3백65계단을 걸어올라야하고 40계단마다 설치된 무서운 관문을 아홉번이나 돌파해야하는(9단의 경지를 상징) 이곳은 한국인의 정기(정기)와 자존심을 세계인의 가슴속에 심고있는 태권도의 총본산이자 연무관이다.
이곳은 세계1백17개국에서 태권도를 수련중인 3천여만 수련생들의 꿈의 고향이고 이들에게 「동양의 신비」로 비쳐지고 있는 태권도의 모든 결정체가 소장돼 있는 메카이기도 하다.
세계각국의 젊은이들은 신비의 무술 태권도의 무서운 파괴력에 흠뻑 취해 입문한후부터 이곳 메카순례를 염원으로 삼고있다.
세계인들은 이곳에서 낡은 도복차림의 한국인 노사범들이 기술보다는 정신을 가르치며 기 (기)가 술(술)을 압도하는 도(도)의 경지를 직접 목격하면서 한국인과 태권도에 대한 외경 (외경)의 염(염)을 갖게 된다.
일체의 소음과 공해로부터 단절되고 대자연속에 묻혀 수련을 하면서 태권도의 진정한 힘을 터득하게 되는 고유의 연무장이다.
그러나 이같은 연무장은 아직 상상에 불과하다. 세계 1백17개국에 한국인 사범을 파견, 1백여만명의 유단자를 길러내고 3천여만명의 수련생을 배출해낸 한국태권도가 아직도 해외수련생들에게 내놓고 보여줄 고유의 연무장조차 변변히 없는 실정이다.
딱 한차례 정부로부터 이같은 연무장건립 지원약속을 받은적은 있다.
88년 서울올림픽전 남한산성부근 5만여평 국유림에 태권도의 본산을 짓자는 말이 당시 연수원장 이종우씨(이종우)와 오고간 적이 있었으나 그뒤로 흐지부지되고 말아 연무장건립계획안은 폐기서류더미속으로 던져졌다.
최근들어 태권도가 올림픽정식종목에 가입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세계태권도연맹등에서 또다시 연무장건립운동이 일고있다.
세계연맹측은 해마다 세계각국의 사범·수련생들로부터 종주국 태권도의 본질을 배울수있는 이같은 연무장 순례요청을 받아왔다. 그러나 정작 종주국으로서 태권도의 본질을 보여주고 가르쳐줄만한 엄숙한 도장이 없어 그때마다 거절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서울 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선 보이는등 날로 수양의 목적보다는 경기력향상에 치중하게된 태권도계는 사라져가는 종주국의 법통을 잃지 않으려고 72년 서울 영동에 국기원(국기원) 을 건립, 태권도 정신의 본산으로 삼아왔으나 도심속에 갇혀있는데다 장소마저 좁아 일개 체육관으로 전락해 있는 실정이다.
세계태권도연맹산하에 있는 연수원은 태권도의 이론체계·연수등을 목적으로 조직을 갖추고는 있으나 장소가 없어 각종대회로 복잡한 국기원을 빌려 근근히 지도자연수를 실시하고있는 형편이다.
세계연맹사무총장인 이씨와 대한태권도협회 강원식(강원식)전무등 일부 뜻있는 태권도인들은 사재를 털어 염원인 메카건립을 추진하려하기도 했으나 5만여평에 달하는 엄청난 땅값에 포기할수밖에 없었고 태권도인들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려놓고 있다.
때마침 체육부가 남·북으로 갈라진 세계연맹과 국제연맹의 통합을 시도, 태권도의 올림픽정식종목 채택을 적극지원할 계획이어서 고유의 연무장 건립문제는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 태권도인들의 일치된 생각이다.
중국의 우슈가 소림사등 전통적 본산을 보유하면서 아시안게임의 정식종목에 채택되는등 확산일로에 있고 유도를 올림픽 정식종목에 끼워넣은 일본이 강도관(강도관) 무도관(무도관)등 전통적인 도장을 유지·발전시키면서 세계유도인들을 감동시키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꼭 서울근교가 아니더라도 어느 심산유곡에 태권도의 대본산이 건립된다면 그럴싸할 것임에 틀림없다. <권오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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