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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닮은 거리 … 아, 걷고 싶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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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상자 같은 고층 빌딩과 바둑판 같은 도로망은 현대 도시의 일상 풍경입니다. 곧게 뻗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이를 피해 곡예하듯 움직이는 시민들의 모습은 도시가 얼마나 자동차 중심인지를 보여 줍니다.

요즘은 우리의 도시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육교와 지하도를 없애고 지상 보행로를 확충하는 등 인간 중심의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자동차 없는 '보행자 전용 지역'을 지정해 운영하기도 합니다.

이화여대 앞길(왼쪽)은 원래 곧은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차도폭을 줄이고 보도를 넓혀 걷기 위한 환경을 많이 개선했습니다. 직선의 도로가 구불구불한 길로 바뀌면 차들은 빨리 달릴 수 없습니다. 대신 시민들은 걷는 즐거움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비좁은 보도에서 인파에 부딪치며 걷던 때와는 상황이 달라지는 겁니다.

덕수궁 돌담길(오른쪽)도 차도 폭을 크게 좁히면서 굽은 길을 조성했습니다. 걷고 싶은 길이 만들어진 겁니다. 오솔길을 닮은 이 길을 걷는 시민들은 보도 폭의 변화를 통해 공간의 편안함과 넉넉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 돌담길이 갖는 역사와 문화적 경관을 동시에 음미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가질 것입니다.

자연발생적인 취락의 길은 모두 곡선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대개 곡선으로 움직이고 거기서 자연스러움과 쾌적함을 느낍니다. 자동차의 속도에 비중을 두는 전면도로와 달리 상업지구 또는 문화지구의 이면도로에서는 걷기 편한 자연스러운 길이 조성되길 시민들은 원합니다. 오늘날 도시마다 '걷고 싶은 길'을 만들고 있는데, 이는 인간 중심의 도시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권영걸 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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