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공주 "저 원래 그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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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가 망가졌다.

차세대 뮤지컬 스타로 꼽히는 윤공주(25) 얘기다. '그리스'의 샌디, '겨울나그네'의 다혜로 늘 청초하고 해맑은 이미지를 간직해 온 그녀다. 그런데 현재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창작 뮤지컬 '컨페션'에선 영 딴판이다. 스타를 꿈꾸는 가수 지망생 김태연으로 분한 그녀는 대걸레 막대기를 들고 엉거주춤한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 엉뚱하고 코믹한 연기로 관객의 웃음을 터뜨리게 하고 있다. "첫인상만 새침해 보이지, 5분만 얘기해도 제가 얼마나 푼수끼가 있는지 다들 눈치채요."

단국대 연극영화과를 나왔다. 친구들이랑 노래방을 즐겨 찾는 정도일 뿐, 가수나 탤런트가 되고자 열망하지 않던 그녀는 선배 손지원(뮤지컬 배우이자 손진책.김성녀씨의 딸)를 만나면서 뮤지컬의 맛을 알게 됐다. "언니랑 같이 뮤지컬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평상시엔 소박해 보이던 네가 무대만 서면 너무 예쁘다'란 주변의 말이 저에게 용기를 주었죠." 2001년 '가스펠'의 앙상블을 시작으로 '토요일 밤의 열기' '사랑은 비를 타고' '드라큘라' 등에 출연하면서 실력을 쌓아왔다.

현재 그녀는 상한가다. 올 초 뮤지컬 전문지 '더 뮤지컬'이 실시한 설문조사 '2006년을 대표할 뮤지컬 배우'에 오만석.배해선에 이어 세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영화로 치면 정윤희나 오드리 헵번처럼 맑으면서도 한편으로 슬픔을 간직한, 가장 전형적인 여주인공 스타일"이라는 게 뮤지컬 제작자들의 평가다. 그러나 막상 윤공주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다"며 안달이다. '드라큘라'의 로레인처럼 거칠고 파격적인 인물에 하고 싶단다. 왜 안전한 길을 놔두고 어려운 것만 고집할까. "중.고교시절 아침에 일어날때마다 '난 왜 이렇게 살지' '죽고 싶다'란 생각을 안 한 적이 없어요. 사연 많고 격정적인 인물에 제가 매력을 느끼는 것도 그런 경험 때문일 것"이란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었는지 묻자 "나이 육십 넘어 자서전을 쓸 때까진 비밀"이라며 입을 꽉 다문다.

조금 뜨는가 싶으면 뮤지컬.영화.드라마 안 가리고 닥치는 대로 옮겨다니는 풍토에서 윤공주는 겹치기를 안 하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왕성하게 활동한 것 같은데 올해 그녀는 달랑 두편에만 등장했다. 단순하고 순박하며 인내심이 강한 그녀가 무대 위 '공주'로 오래오래 서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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