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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우석칼럼

파격적 경제정책의 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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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도 비정통적인 방법으로 경제회복의 실마리를 잡았다. 고이즈미 총리는 한국과는 악연이 많았지만 적어도 경제 부문에선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높은 인기 속에 5년5개월이나 집권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이즈미는 주류적 관행에 비춰 발상이나 행동이 독특하다. 총리가 된 것 자체가 의외였다. 어찌 보면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런 양국 수뇌의 성격 때문에 한.일 관계가 그토록 큰 진폭으로 요동쳤는지 모른다.

고이즈미는 취임하자 종래와는 다른 방식으로 경제 문제에 도전했다. 재정자금을 풀어 경기 자극책을 쓰는 대신 구조개혁에 초점을 맞췄다. 경제를 살리는 길은 민간경제를 중심으로 근본 체질을 튼튼히 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우선 공적자금을 투입, 금융기관과 기업의 부실부터 털었다. 경제 선순환의 걸림돌이 되는 신용경색을 깬 것이다. 예산과 공무원을 삭감하고 정부 사업을 대폭 민간에 이양했다. 물론 저항도 많았고 정치적 부담도 컸다. 그러나 고집과 오기로 그런 생경한 정책을 밀고 나갔고 어떤 땐 국회 해산이라는 정면승부도 했다. 고이즈미는 고독한 괴짜지만 그 밑엔 개혁 의지를 같이하는 전문가가 많았다. 유능한 참모진이 확고한 비전과 치밀한 실행계획을 마련하면 그것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국민을 설득하는 일은 고이즈미의 몫이었다. 고이즈미는 개혁을 어깨에 힘 빼고 쉽게 설명했다. 첨단제품 전시회에 가 "기업들이 이렇게 값싸고 좋은 제품을 많이 만드니 이게 바로 개혁 아니냐, 총리 관저에도 하나 사다 놔야겠다"하는 식이다.

고이즈미 방식은 처음엔 부작용이 나고 주가가 크게 떨어지기까지 했으나 약 2년 후부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해 이제는 경기 회복을 자신할 수 있게 되었다. 마하티르나 고이즈미 같은 이단아나 괴짜이기에 그런 역전의 발상과 행동이 가능했고 국민도 참고 견딘 대가를 제대로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소신과 고집이 있고 남의 눈치를 안 본다는 점에서 앞의 두 사람에게 뒤지지 않는다. 그래서 생소한 정책에 도전하고 있다. 비정통적이란 점에서 더 파격적이다. 불완전한 시장보다 정부 역할을 중시하고 균형과 분배를 특히 강조하고 있다. 증세(增稅)와 큰 정부도 마다하지 않는다. 세계의 추세와는 반대되는 길이다. 이러한 경제실험에 모두 걱정을 많이 하면서도 마하티르나 고이즈미의 전례에 비춰 실낱같은 기적을 기대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기다려도 기다려도 경제실험의 효과가 나타날 조짐이 없다.

파격적 정책은 큰 리스크가 따른다. 종래와 다르게 한다고 해서 새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잘못하면 파국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런 모험이 성공하려면 한 수 더 보는 지혜와 치밀성.정열.헌신이 필요한데 그런 것을 실감할 수 없다. 참여정부의 불행이고 국민의 불운이다. 그런데도 한 수 더 떠 '비전 2030'이라는 무지개 같은 계획을 또 내놓았다. 우리는 지금 무정란(無精卵)을 품고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최우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