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없는 「진압」… 깊어진 불신/「현대중」 공권력투입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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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불법파업 강력대응 의지 실행/노사 모두 불성실 협상도 문제
「공권력투입에 의한 강제진압」이란 최악의 수습방안으로 끝난 현대중공업파업사태는 불법파업행위에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당국의 의지표명이란 점에서 주목을 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통해 공권력투입은 곧 노조탄압과 직결된다는 오해를 살 여지를 크게 남긴 것 또한 사실이다.
뿐만아니라 노사 모두 대화나 자체노력을 통한 해결책을 찾기보다 갈데까지 가보고 안되면 공권력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불신의 골을 엄청나게 심화시키고 말았다.
이때문에 32개 현대그룹 계열사 근로자들과 마창노련등 각 지역 노련ㆍ재야노동단체들의 잇단 동조파업 및 합세가 예상돼 올봄 노사협상의 큰 걸림돌로 떠오르게 됐다.
이번 현대중공업파업사태는 88년 12월에 시작돼 1백28일만에 끝난 지난해의 사태에서 보았듯이 공권력에 의한 강제수습방안이 예견됐었다.
이는 노조와 회사측이 서로의 주장을 한치도 양보하지 않은데서 이번 파업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번 파업사태의 표면적인 도화선이 된 것은 우기하 현대중공업노조위원장직대(31)의 구속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불씨는 2월 현노조위원장 이영현씨(29)가 취임 1개월만에 구속된 데서 비롯됐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89년 봄의 현대중공업 노사분규와 관련돼 구속기소된 파업지도부위원장 이원건씨(38)의 석방을 위해 조합원 1만여명을 인솔해 2월7일 재판이 진행중인 부산 지법으로 가다 업무방해혐의로 구속됐고 함께 갔던 우씨는 회사측의 고소로 수배를 받다 20일 구속됐었다.
이렇게 사태가 진전되자 노조측은 22일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이같은 일련의 사태는 노조의 조직력과 힘을 약화시키려는 회사측의 명백한 음모』라고 규정짓고 회사측이 고소한 노조간부등 10명에 대한 고소취하를 요구했었다.
그러나 회사측은 지난해에도 장기파업의 후유증을 빨리 치유하고 노사화합차원에서 구속ㆍ수배된 근로자 45명에 대해 고소ㆍ고발을 취하하고 원직복직을 시켜 주었지만 이들은 결국 투쟁일변도의 노사분규를 주동했고 배후조정하는등 악순환만 되풀이 됐다며 노조측의 요구를 거절해 버렸다.
이렇게되자 노조는 22일 태업을 결의하고 이틀간의 태업기간중 회사측과 24일과 25일 새벽 두차례 협상을 했으나 서로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결렬되자 25일 오전 9시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당국은 현대중공업이 규모가 엄청난데다 기타 연관산업에 파급효과를 고려,장기간 방치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기본입장이었다.
또 현대중공업의 파업은 해결방식여하에 따라 그 영향이 앞으로 이어질 노사협상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지난해와 같은 파업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아래 당국은 이같은 사태의 재발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방침이었다.
이번 사태에서 또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노조나 회사측 모두 운영이 미숙하고 사태해결을 위한 성실한 자세가 안돼 있다는 점이다.
노조측은 노사협상을 사원들의 복지증진이라는 1차적인 목적에 사용하지 않고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했으며 그나마 노사협상 시작 하루를 남기고 불법적인 단체행동으로 이끌어가는 미숙함을 보였다.
회사측 역시 노조의 움직임이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지 예견되고 있었는데도 이를 사전에 파악해 대화등을 통한 순리적인 방법으로 풀려하지 않고 「가만 놔두면 공권력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식의 안이하고 불성실한 태도를 취했던 것도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같은 회사측의 불성실한 자세가 결국은 노조측의 불신을 사게된 원인으로 지적된다.
어쨌든 힘의 논리를 앞세운 불법쟁의의 즉각 강제진압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시켜 준 것은 사실이지만 공권력남용 및 노동운동탄압이란 또다른 불씨로 치닫고 있다.
이는 강제진압이 끝난 직후 현대계열사 32개 회사가 소속된 현대그룹노조총연합회(회장 이상범)가 즉각 동조파업을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마창노련산하 58개 회사 4만여명의 근로자가 30일부터 파업에 들어가기로 결의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따라서 당국과 각 회사관계자는 앞으로 예상되는 잇단 연대파업ㆍ동조파업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김형배ㆍ허상천기자>
□「현중사태」 주요일지
▲1월19일:노조위원장 이영현씨 당선
▲2월7일:이영현위원장 연행구속. 근로자 집단조퇴,우기하부위원장 사전영장
▲2월8일:근로자 출근거부 조업중단
▲2월12일:경찰 노조사무실 수색
▲4월17일:단체협상 시작
▲4월20일:우부위원장 구속
▲4월22일:노조,고소ㆍ고발 취하요구. 상집위 파업결정
▲4월23일:태업돌입. 비위대 구성. 노동부 불법쟁의 경고
▲4월25일:파업돌입. 노조간부 10명 피소. 노사정 3자협상 결렬
▲4월26일:경찰 1만명 배치
▲4월27일:회사측 조업중단. 노사 2차협상 결렬. 회사,공권력투입 요청
▲4월28일:경찰투입 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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