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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즐겨읽기] 한수산씨가 토해 낸 떠남과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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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사람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
한수산 지음,
이순형 그림, 해냄,
392면, 1만 원

'인생은 나그네길' 이라 흥얼거리게 하는 가을, 작가 한수산(60)씨가 남한강 가에 마련한 서재 영하당(迎河堂)에서 떠남과 만남의 기록을 물빛에 담아 보내왔다. '시대가 흐르고 변해도 변함없는 중심과 원형과 진정으로 자리한 사람들' 이야기다.

"생각해 보면, 모든 떠남의 길 위에서 만난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챙겨온 것도 사람들이었다 … 여행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상처가 남았다. 그 상처로 신음하다가 딱지가 앉을 무렵이면 또 떠났었다. 사람을 만나러, 사람을 그리워하며."

"글쓰기보다 더한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그에게 소설가 황순원, 시인 박목월, 영문학자 박용주는 큰 스승이었다. 습작 원고를 본 황순원 선생의 한 말씀이 그를 깨우쳤다. "이런 거나 쓰려면 소주나 한 병 먹고 말아."

연필로 노트 한 권에 시 한 편을 쓰는 박목월 선생의 창작 과정을 지켜보던 작가 또한 연필로 노트에 수없이 고쳐 쓰는 소설가가 되었다. 35년 추억으로 작가 가슴에 '사랑'으로 남은 박용주 선생은 각별한 인연이다. 은사 박용주는 그에게 '눈을 들어 바라볼 수 있는 먼 곳'이자, 그를 '견고하게 지켜준 기둥'이었다. 사랑이란 '어쩔 수 없었다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한수산 필화 사건'이라 불리는 고문의 깊은 상처 구덩이에서 그를 끌어 올려준 이경재 신부 또한 필연의 만남이었다. 백두산 정상에서 작가에게 영세를 준 이 신부는 그를 기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어찌 이런 만남뿐이랴. 쿠바 유민사를 취재하려 한인 2세의 회고를 듣던 작가는 할아버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그만 울어버렸다. "한국은 하나야. 왜 통일을 안 하는 거야? 왜 남쪽 북쪽이 싸워? 그 생각만 하면 쿠바 사람한테 부끄러워."

고려인(까레이스키)을 찾아 특별 열차를 타고 8박9일 8000㎞를 달린 시베리아에서 그는 스스로 묻는다. "인간답게 살아남는다는 것, 그보다 더한 영광이 땅 위를 사는 자들에게 또 무엇이 있겠는가."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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