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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진 밀약설 금가는 밀월/YS,4ㆍ17회동때 “차라리 은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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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작정치 증거 보이며 공격/JP는 책상치며 설득 분위기 험악
청와대 대권밀약설이 제기되면서 민자당은 심한 내홍에 빠졌다. 박철언파동이 가라앉나 했더니 이번엔 차기대권 논란이 벌어져 이러다간 민자당이 제대로 통합정신을 이어가겠느냐는 걱정마저 나오고 있다.
24일 대권밀약 문제가 파문을 일으키자 3계파의 대리인격인 당3역과 김윤환정무장관이 모여 수습책을 논의,『92년이후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는 짤막한 공식발표로 일단 진화제스처를 썼다. 그러나 이 문제를 둘러싼 의혹과 반목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25일 당무회의에서 민정-민주계가 맞붙었다.
○대권후보 도장찍기
○…대권밀약설을 민주계가 퍼뜨린 데 대해선 몇가지 추측이 나돌고 있다.
가장 상식적인 해석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김영삼최고위원의 위상을 확실히 해두기 위한 선공이라는 것. 합당당시의 밀약을 명문화시킴으로써 김영삼최고위원을 노대통령이후의 대권후보로 명백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는 견해다.
또 일부에선 민주계의 의도를 김영삼최고위원에게로 당권을 몰아가기 위한 포석이라고 보고있다. 이렇게 볼때 3계파간의 갈등의 근본원인은 결국 당권이 노대통령과 두 김최고위원에게로 나뉘어 있기 때문인데 민주계는 파동을 일으켜서라도 노대통령의 영향력이 앞으로 92년까지 2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키려 하는 것 같다.
김최고위원 측근중에선 『앞으로 정권수임을 위해 지금부터 서서히 권한이양이 이뤄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하고 있다.
민정계나 청와대측이 불쾌한 점은 바로 이런 대목. 김영삼최고위원의 대권승계설이 떠다니면 노대통령의 누수현상이 앞당겨지고 따라서 민정계의 구심력 약화를 노린 것이라는 해석이다.
대권밀약설은 또 김최고위원이 현행 헌법에 의한 후계자라는 인상을 풍김으로써 민정ㆍ공화계가 언젠가 제기할 내각책임제 개헌논의에 미리 쐐기를 박는 효과도 노린 것 같다.
그러나 이와는 전혀 다른 관측도 있다. 일부에선 김영삼최고위원이나 민주계가 분가를 상정해놓고 민자당을 흔드는 전략을 구사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하고 있다.
즉 다음 대통령선거는 절대로 현행 대통령중심제 헌법으로 치를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한 노대통령이나 내각책임제 소신론자인 김종필최고위원에 대해 개헌불가론을 들이대고 당권장악을 밀고나가 성공하면 당권을 차지하고 그렇지 않으면 민자당을 뛰쳐나가는 극한적인 양자택일 전법이라는 해석이다.
이런 관측은 김영삼최고위원이 박철언파동수습을 위해 열린 17일 청와대회담때부터 마음을 굳힌 것 같다는 것이며 그 이후 KBS문제.대구보선대책.경제대책등에 있어서 과거야당시절과 비슷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어 민자당에서 갈라섰을 때를 대비한 명분축적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김영삼최고위원은 17일 회담때 「탈당」용의도 비췄다는 얘기다.
○방소갈등 거친 항변
○…지난 17일 노태우대통령,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박태준최고위원대행이 참석한 청와대 4자회담은 JP가 전한 『격한 토론도 있었다』는 정도를 넘어 『험악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는 후문이다.
김영삼최고위원은 이날 노란봉투를 들고 들어갔는데 그 봉투안에는 정보ㆍ공작정치와 관련해 노대통령에게 제시할 증거자료,김위원이 따지고자 하는 쟁점목록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식사가 끝나자 김최고위원은 『대통령에게 보여드릴 것이 있다』며 노대통령과 단둘이 서재로 자리를 옮겨 소위 「중요문건」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 문건은 안기부가 창당전당대회를 앞두고 김영삼씨를 견제하기위해 만든 이른바 공작성 계획서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어 김최고위원은 박철언의원이 안기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안기부 간부들의 인적 구성,그들과 박의원과의 관계등을 들어 소상히 설명하고 안기부 고위간부들의 경질을 강력히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30분간의 단독요담이 있은 후 두 사람은 JPㆍ박대행과 합석했는데 김최고위원은 그 자리에서도 안기부가 자신에게 가하고 있는 각종 압력등을 따지고 방소과정에서 박철언장관으로부터 당한 「수모」를 털어놨다.
김최고위원은 『고르바초프를 만나자마자 대통령의 안부부터 전했다』며 『내 공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일했는데 나를 대표로 보내놓고 박장관의 그릇된 보고만 매일 따로 들을 수 있느냐』고 불만을 털어 놓았다고 한다.
김최고위원은 특히 노대통령이 민정계 중진들만 청와대로 불러들여 박장관을 도와주라고 한 점을 지적하며 『우리의 모든 운명이 걸린건데 왜 계파간 갈등으로 이해하려 하느냐』고 거칠 게 항변했다고 한다.
이에 노대통령이 박철언문제,민정계중진 청와대만찬 등을 해명했으나 김최고위원은 노대통령의 대답을 납득하지 않고 마음속에 품었던 말을 유보없이 털어놨다.
안기부ㆍ보안사가 진천-음성선거에서 7대3 또는 6대4로 1만표 차이로 이긴다고 했으나 결과는 오히려 4대6으로 패배했다고 주장하며 정보의 왜곡과 편향을 따졌는데 특히 자신의 후원자,정치자금을 댄 일이 있는 기업에 대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무사찰등을 예로 들었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김최고위원에 대한 체크가 일상적인 것이고 대기업에 대한 조사는 부동산투기관계 때문등이라는 것을 누누이 설명.
○대통령 “나도 조사”
그러나 전혀 납득하지 않고 있던 김최고위원은 오후 5시쯤 『박장관이 지금 하는 짓을 보면 나를 들여놓고 죽이겠다는 것 아니냐』며 『나는 길거리에 나가 국민들에게 맞아죽었으면 죽었지 당신들 손에는 안죽는다』는 극언과 함께 정 그러면 탈당과 정계은퇴를 한 후 국민운동이나 하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내가 모든 것 포기하고 30년 반독재 투쟁한 공적만 관속에 넣고 가기로 마음먹으면 무슨 일이든 못할 것 같으냐』『탈당해 혼자라도 싸우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박태준대행이 김최고위원을 잡아다 앉히고 이 바람에 노대통령도 화를 내자 김종필최고위원과 박대행이 노대통령을 『잠시 나가 계시라고』고 내보내고 3자가 남아 격론과 설득을 계속.
이 자리에서 김종필최고위원은 책상을 치며 『왜 이러느냐. 우리도 다 조사하는데 뭘 그러느냐.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내 후배지만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모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참동안 설득.
이때 노대통령은 집무실에 가서 서류뭉치를 한보따리 들고와 보이면서 『안기부는 나의 동정도 자료로 수집관리하고 있다』고 설명. 그 문서는 김종필최고위원과 박대행은 물론 박철언장관의 동향이 체크,보고된 것이었다는 것.
노대통령은 『김최고위원을 중심으로 세 분이 잘 해달라』고 했고 세 사람은 차를 마시며 격한 감정의 뒤끝을 수습했다. 그러나 서로 감정의 앙금을 말끔히 씻지는 못했으며 어떤 합의를 할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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